습작

거울속의 여자

湖月, 2016. 11. 12. 11:06

거울속의 여자


거울 속의 여자 /안행덕<br><br><br>거울 속의 도도한 여자 <br>나를 보고 아는 척한다 <br>빙긋 냉소 같은 미소를 짓다가 <br>화장기 없는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눈썹을 그리며 <br>나를 빤히 보고 말을 건다. <br>울지 마라 울지 마라 <br>그렇게 오래 살고도 아직도 <br>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여자야 <br>잘난척하는 낯설기만 한 그녀 <br>한심한 듯 나를 한참 보다가 <br>물보라 색 등꽃 같은 입술로 속삭인다. <br>네 마음의 빗장을 풀어라 <br>텅 빈 마음의 곳간을 열어라 <br>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채우라 <br><br>내 가슴에 체한 듯 걸려있는 답답증을 <br>거울 속의 여자가 눈치 챈 모양이다 <br>날 위로하던 거울 속 여자가 먼저 눈물 흘린다

 





 3 월에 핀 눈꽃            
산봉우리는
겨울의 끝을 잡고
하얀 드레스를 걸치고
멀리보이는 봄을 손짓한다

살금살금 뒷걸음질하는 겨울
아장거리며 오는 봄을
심술 부려 소금같은
흰눈을 뿌린다

살며시 문열던
목련화 깜짝 놀라
문풍지를 바른다



아침 산책길(2)

(딱따구리)

 

 


겨우내 벗은 몸에 흰 눈을 덮고

합장하는 가지 사이로 얼굴 내민

이른 아침 햇살

민들레처럼 환하다


산등성이 넘어가는 내 발걸음을 잡는

톡톡 나무를 파는 소리

산사의 목탁소리처럼

나를 허기지게 한다


따르르 딱 산을 흔드는 저 소리

누구를 울리려 저리도

간절하단 말인가




벌써 봄의 새식구 집을 장만 하나보다.

윤산을 오르는 등산 길에 딱따구리가 아침인사를 하는것이

싫지 않은 산책길 이다.

 

희나리 같은 남자

 

  


희나리 같은 남자

   

지하철 층층대 난간, 작은 공간의 여백에

제집인 양

방 한 칸들이고 자리를 편다

자라목처럼 목을 등껍질에 숨기는 게

전생이 거북이나 자라였나 보다

납작 엎드려 평생 지은 죄를 풀어놓고

대죄를 하는데

대전차처럼 무심히 지나는 길손들

사정을 두지 않고 그의 방을 침범하고

그의 등에 시퍼런 시선을 꽂는다

뭇 시선을 맞고 아프게 얼어버린 사람

따뜻한 초가의 저녁연기煙氣 그리워하며

작은 공간에 고립을 견디던 발(足)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타전을 친다

비 내리는 처마 밑의 나그네 같은 사람

희끗희끗 빛바랜 희나리 같은 남자

 

 

  

가을바람은

 


산모퉁이 휘돌아 실개천을 건넌다

푸른 초원을 밟으며

살랑거리며 걸어온다.

천 년의 세월도 여유롭게 견뎌온 

이끼 낀 바위는 넓은 가슴 내밀며

잠시 쉬어가라 손짓하지만

눈인사만 남기고

엉덩이 씰룩거리며 달아난다.

넓은 들에 허수아비 자꾸만 말을 거는데

여름을 보내는 마음이 바쁘다

뒷산에 올라 알밤을 후두두 털어보고

옹골지게 여물었다고 고개 끄덕이고

오동나무 떡갈나무 사이를 스치며

넌지시 가을빛이 무엇인지 알려주면서

앞산 둔덕을 뒷짐 지고 살랑살랑 넘어가며

수척한 여름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