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발표작 / 항해외 1편
항해 /안행덕
검은 고무 튜브에 하반신을 감추고
납작 업들인 채 헤엄을 치는 사내
하반신의 폐허에
도마뱀 꼬리처럼 돋아난
고무 지느러미를 흔들며
시장통을 유영한다.
오물이 질펀한 바닥에
쉼표를 찍고 행간을 치는 사이
퍼렇게 날이 선 시선들이
두려움에 떠는 작은 심장을
인정없이 냉각시킨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인파
뱃고동처럼, 발걸음 소리만 울릴 뿐
등대 같은 적선의 빛은 없어라
진종일 사나운 파도에 지친 시린 눈빛
안쓰럽게 지켜보던 좌판의 노파
끌끌 혀를 차며 지폐 한 장 던진다.
좌초될 듯 흔들리던 고무 지느러미
그제야 두려움 없이 인파를 헤치며
거친 바다를 건넌다.
내 바람 되거든 / 안행덕
제상 위에 다소곳한 어머니
흑백 사진틀에 갇히신지 어언 20년
해마다 그 자리 그곳에서 젖은 눈으로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신다.
경전을 펼쳐 놓은 듯 차려진 제수 사이로
파릇파릇 새순처럼 돋는 그날들
봉숭아 꽃물을 들여야 저승길이 밝아진다고
손가락을 흔들며 내밀던 파리한 손
안개 같은 추억이 향처럼 피어오른다
퇴주잔에 술잔 비우는 내 손가락
어머니를 닮아가는 걸 이제 알겠네
눈물 같은 촛불 앞에 나는 어머니와 잠시 마주앉아있네
어머니의 情 뜨겁게 내 손끝에 전해지고
부드러운 음률로 들려주던 그 사랑 노래
내 몸 안에 붉은 점자로 율법처럼 찍혀가네
조금씩 희미해지는 그 빛이 두려워
후다닥 일어서 축문에 불을 붙이고
뜨거운 고백 고운 넋, 두 손으로 받들어
재가 된 당신을 바람에 실어
어느 하늘가 그곳에 보내드리고
내 바람 되거든 그때 허공에서 다시 만나리
계간 웹북 2009년 여름호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