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노량진 고등어 / 노수옥

湖月, 2016. 12. 14. 15:10

노량진 고등어 / 노수옥



등 푸른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우월한 DNA를 가진 고등동물

  그들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은

  높은 파도를 넘어 바다를 완주하고

  사나운 물고기를 피해

  살아남는 법을 이수해야 한다는 것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거려도

  원뿔형 머리로 책 속을 헤집고

  균형을 잡으려고 부레에

  공기를 빵빵하게 불어넣었다

  재수, 삼수, 사수

  치열한 경쟁 속을 헤엄치던

  비늘 없는 몸뚱이에 가시가 돋았다

  상처 입은 한 무리 고등어 떼가

  물살이 거친 노량진해협을 빠져나갔다

  수평선을 넘지 못한 고등어들

  다시 완주를 시작하려고

  출발선에 서 있지만 결승점은 까마득하다

  남아있는 고등어들 소금으로 간한 컵밥이 무리였는지

  허기를 이기지 못한 부레에

  서서히 바람이 빠지기 시작했다

  비상식량으로 저장한 DHA가 다 소진되어

  한물간 눈동자가 빛을 잃어간다

  등에 새겨진 파도의 무늬도 하나, 둘 사라져버렸다

  그들도 한때는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펄펄 뛰던 시절이 있었다

  넓고 푸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던

  토막 난 꿈이 고시원 쪽방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