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달빛과 거미
湖月,
2012. 11. 28. 17:53
문예지 월간 모던포엠 2012년12월호
달빛과 거미 / 안행덕
열이레 달빛이 처마 밑 어둠을 밀어낸다
어둠에 익숙한 거미 한 마리
조심스러운 사냥을 꿈꾼다
조심조심 묶어둔 거미줄에 걸린 환한 달빛
살아서 퍼덕거린다
한번 걸린 먹이는 놓아 줄 수 없다는 듯
예리한 발톱으로 줄을 당긴다
출렁,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날렵하다
풍경도 없이 사라지는 척
바람에 흔들리는 달빛을
슬쩍 바람 사이에 가볍게 옭아맨다
그렁그렁한 슬픔 하나 어둠에 매달아 놓고
보이지 않는 덫으로 달빛을 유혹한다.
노루발 / 안행덕
먼 하늘 그리워 울음 삼킨 숲
잎마다 푸른 그늘이 내려앉은 그곳
어둠을 빠져나온 여린 노루발 꽃송이
전설을 방울방울 피워내고 있다
은혜를 아는 노루는
산에만 발자국을 찍는 게 아니었구나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옹색한 달셋방
달빛을 콩콩 찍고 가는 발자국도 있다
매일같이 낯선 길을 돌고 도는
수선 집 재봉틀에 달린 노루발
허기진 발로 밥 한 공기 찾아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구닥다리 낡은 세월 뒤집어가며
이웃의 서러움도 꾹꾹 밟아 기워내는 발
툭툭 뜯어진 옷깃, 털어내는 발톱 끝에
싸라기처럼 묻어나는 실밥을 먹고
야윈 발가락이 절룩거릴 때마다
덧대고 이어주면 드디어 빛나는 진실
오늘도 생의 늑골 밑을 환하게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