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바람과 詩(詩集)

면경과 어머니

湖月, 2012. 3. 4. 17:13

 

면경과 어머니 / 안행덕



희뿌연 면경 속에서 탈출한 세월

나 어릴 적 살던 행랑채에 와 있네

쇠죽솥에 지펴진 아궁이 불

토닥토닥 사그라질 줄 모르네


빛 좋은 개울가에

철썩철썩 빨래 방망이질 소리

찰싹찰싹 종아리에

싸리 회초리 감기는 소리

어머니 가슴에 피멍 드는 소리

바람 되어 가버린 세월이

흐릿한 면경 속에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네

언제나 면경처럼 맑아야 한다 하시던

내 어머니 거기 계시네


어머니의 반듯한 걸음걸이에

속 깊은 그 정

나 예전에는 몰랐네

곰팡이 핀 세월을 넘고서야

이젠 내가 어머니 되어

면경 속에, 지나간 세월을 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