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목련 / 손진은

湖月, 2015. 6. 1. 21:48

 

목련 / 손진은

 

구름을 낳는 나무가 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태반인 양 묻어놓은 땅속 곳간에서

구름을 낳아 허공에 매다는 나무

불끈 솟은 힘줄 송글송글한 땀으로

동그랗게 혹은 잘게 부순 추위와 어둠 햇살을 뭉쳐

튼 살 틈으로 밀어내는 구름의 자식을

혀와 목젖 근처 심지어는 팔다리에까지

입성으로 꿰찬 나무의 기쁨!

햇귀와 흙냄새로 술렁이는

하늘 아래 가장 설레는

어치와 때까치와 아지랑이의 시간

대궁을 타고 터지는 저 구름 씨앗 소리 좀 보아

펼친 구름의 옆구리 사이에서

새 흉내를 내며 햇살이 소리치며 날아갈 때

저 불구의 나무도

불굴의 나무가 되어

누렇게 익어가는 상아 궁전의 봉오릴 타고

지상을 뜨고 싶단

맑고 뜨거운 생각 부풀리는 것을

그러나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듯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애써 낳은 구름 땅바닥에 엎질러버리곤

새끼를 잃은 어미소가 되어

허전을 간식처럼 되새김질하는

저 자글자글한 잔주름

 

 

 

 

           손진은 시인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매일신문 시평론 당선

1992년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민음사

1996년 <눈먼 새를 다른 숲에 풀어놓고> 문학동네

경주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