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月, 2012. 3. 8. 16:39

 


묵비권  / 안행덕


치과 의자에 앉은 나는

회칠한 무덤에 앉은 듯 모골이 선다

머리 위의 서치라이트는 내 속에 숨겨놓은

비밀을 캐내려는 듯

강렬한, 문초를 시작한다

지은 죄가 많은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묵비권으로 맞선다


치료기에서 내는 드릴 소리는

퍼런 칼날에 물을 뿌리던 망나니처럼

인정을 두지 않는다

늘인 목을 더는 늘릴 수도 없고

두 주먹을 꼭 쥐고 5분을 5년처럼

변증법에 호소하며

법대로 하라고 묵비권으로 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