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도마
바닥
우리는 언제부턴가 날개를 갖고 싶어 하며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추락하는 연습을 한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
파산하는 것 막판이 되는 것
탈탈 털리고 빈손일 때
맨바닥이다
천둥벌거숭이
숭숭 뚫린 가슴
비로소 살아남는 법을 궁리한다
바닥을 기어보면 안다
더는 추락 할 곳도 없다는 것을
바닥을 칠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걸 안다
바닥은 시작이다
도마 / 안행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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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속도 좋으셔
시퍼런 칼날이
제멋대로 춤추고
난도질을 해 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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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헤벌쭉
웃고 만 계시니
자신이 점점 패어
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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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마
세월은 칼날
虎尾草
밤마다 별님들이 내려와
호랑이 꼬리 만지며 놀다 간 자리
별들이 찍어놓은 손자국은 꽃으로 피고
범의 꼬리를 닮아서 호미초라네
구릉지 풀숲에 섭슬려 살아도
가슴에 품은 뜻만, 크고 높아
아래서 위쪽으로 피어난 모습
장군의 수염을 닮아
까치수염이라 하기도 하지
밤마다 별을 찾아 헤매다가
허기진 그리움은 별꽃으로 변하고
날마다 별님을 기다리는 호미초虎尾草는
서럽도록
애면글면 별을 사랑하지 않으면
별꽃은 피지 못하지
가을 간이역 /안행덕
두 줄의 긴 선로 변에서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가을처럼 피어있는 꽃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고
기적이 울릴 때마다
두근거림을
살랑살랑 흔들림으로 말하는 저 살살이처럼
작은 간이역에 추억 같은 긴 그림자로
막막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여자
당신이 도착할 레일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열차는 정시에 멈춰 서지만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다
텅 빈 대기실을 기웃거리는 코스모스
그리움으로 길어진 목이 안쓰럽다
날은 저물고
그리웠던 날들을 회상하듯
달빛만 내려와 빈 벤치를 지키고
갈 곳 잃은 가랑잎만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