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의 추억
안행덕
여보 정말 맛있는 거 사줄게 "
"정말로.....!."
"내가 거짓말하는 거 본일 있나"
남편을 따라 나섰다. 한참을 달리다 골목으로 접어들더니 다 왔으니 내리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음식 집은 없다 나는 좀 전에 남편이 한말을 생각하고
"맛있는 게 어디 있는데"
잔말말고 내리면 있다는 것이다 으아.......... 하지만 일단
차에서 내렸다.
한참을 걸었다 아무리 봐도 변두리 주택가다 상추랑 쑥갓이 심어져있는 조그만 한옥으로
안내되었다
"아줌마 꽁보리밥 둘 주세요"남편 말에 펑퍼짐한 아주머니는 반가운 미소로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장사 잘되시죠"
"그냥 그래요"두 사람은 잘 아는 것 같다 남편은 내게 시선을 보내더니 "먹어봐
정말 맛있어"
난 기가 막혔다 맛있는 거 사준다더니 웬 꽁보리밥인가?
난 어릴 때부터 보리밥을 싫어했다 위장이 약한 나는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전쟁이 끝난 직후의 나라살림이나 가정살림이 모두 어려운 때이어서
보리밥도 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난 언제나 어머니의 보호 속에 쌀밥을 먹었다
몸이 약한 내가 혹 여라도 탈이 날까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으로 자랐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또 남편이 보리밥을 좋아해서 가끔 사먹기도 하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오는
남편이 이해 할 수 없다
얼마 후 밥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시내의 식당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밥상이다
정갈하고 깨끗하면서 귀한 손님 대접을 하는 것 같은 밥상에는
역시 보리밥과 고추장에 풋고추가 올려져있다
큰 대접에 열무김치와 된장을 넣고 비벼주는 남편의 성의에
한 입 먹어보았다 .남편 말대로 정말 맛이 있다
보리밥을 먹고 보니 어릴 때 아련한 옛 추억이 생각난다
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을 때인가 보다
시골집외가댁은 언제나 추억 속의 아름다운 내 유년이 있다
신작로 길의 포푸라 그늘도 그립고 작은 시냇물의 물장구치던 그때도 그립다
언제나 그렇듯이 농사짓는 농촌은 가을이 풍성하다
그러나 춘궁기라는 말처럼 가을에 수학해놓은 쌀과 고구마가 바닥이날지음의 봄은
농촌의 양식 걱정할 시기이다 .
그때 보리가 아직 덜 익어 베어내기는 좀 이른 시기에 보리사리 라는 게 있다
외숙모는 조카인 내게 언제나 정말 맛있는 보리를 만들어주셨다
도회지에서 온 입 까다로운 조카딸을 위해서 성냥과 키를 들고 보리밭으로 나가신다.
위의 오빠들과 나도 따라나선다 보리 밭둑에 작은 솔가지를 피우고 밭에 있는 보리를
베어
그 위에서 구어 낸다 그을러진 보리이삭을 키위에 놓고 두 손으로 비비고 키질을 하면
파란 보리 낱알이 남는다
그릇에 담을 것도 없이 키 위의 보리를 한 옹 큼 씩 집어먹던 그 맛.......
한참 먹다보면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자기의 얼굴에 묻은 검딩은 모르고 서로 뺨의 검은 수염이라며 웃고 놀던
그때의 보리 파란 보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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