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ㅡ 이시하
새는,
이 시 하
낡고 어두운 그림자를 제 발목에 묶고 생의 안쪽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었을 테지 비에 젖은 발목을 끌며 어린 날개를 무겁게무겁게 퍼덕였을 테지, 가느다란 목덜미를 돌아 흐르는 제 절박한 울음소리를 자꾸자꾸 밀어냈을 테지 여물지 못한 발톱을 내려다보며 새는, 저 혼자 그만 부끄러웠을 테지, 그러다 또 울먹울먹도 했을 테지
어둠이 깊었으므로
이제,
어린 새의 이야기를 해도 좋으리
나지막이 울음 잦아들던 어깨와 눈치껏 떨어내던 오래된 흉터들을 이제, 이야기해도 좋으리 잊혀가는 전설을 들려주듯,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낯설고 차가운 이국의 신화를 들려주듯 이제, 당신에게 어린 새를 이야기해도 좋으리
새는,
따스운 생의 아랫목에
제 그림자를 누이고
푸득푸득, 혼잣말을 했을 테지
흥건하게 번지는 어둠을
쓰윽, 닦아내기도 했을 테지
새는.
(제10회 수주문학상 대상 당선작)
[프로필]
이시하(본명 이향미)
▒ 경기 연천 출생. |
▒ 2005년 8월 첫시집 '푸른 生으로의 집착' (2005.8.20 ) 출간. |
▒ 2006년 5월 '제12회 지용 신인 문학상' 수상. |
▒ 2008년 9월 '제10회 수주문학상 대상' 수상. |
※심사평
390명의 투고 작품 중에서 본심에 올라온 것은 모두 51명의 작품이었다. 투고된 작품의 양도 적지 않았지만,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준도 만만치 않아 이 상에 대한 신인들의 뜨거운 관심이 놀라웠다. 이 상이 10회를 거듭해 오는 동안 좋은 시인을 발굴하고 또 시에 뜻을 둔 사람들을 고무시켜 우리 시단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여 왔음을 반갑고 기쁘게 느낄 수 있었다. 원고에서 투고자의 이름을 모두 빼고 가능한 한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 상태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것도 이 상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데 기여했으리라 생각된다. ‘수주 변영로’라는 큰 시인의 이름과 10년의 전통과 심사의 공정성을 두루 생각한다면, 수상자나 투고자 모두 이 상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본심에서 선자들의 손에 끝까지 남은 작품은 「버드나무 장례식」외 4편(이종섶), 「박새의 장례식」 외 4편(김우진), 「슈퍼맨의 꿈」외 4편(최준영), 「새는,」외 4편(이향미) 등이었다.
「버드나무 장례식」외 4편은 일상적인 삶의 평범한 경험을 극적인 형식에 담고 있지만, 나뭇잎 지는 것을 “등 위에 벼랑을 만들어 한순간에 떨어지는 종소리”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그것을 드러내는 이미지는 평범하지 않다. 그 이미지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미적 감각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에 삶과 세계에 대한 상식적인 깨달음을 담아 제시하려는 태도가 보여 아쉬웠다.
「박새의 장례식」외 4편은 삶이나 자연의 비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극적으로 엮고 압축해내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이 시의 이미지는 밀도와 집중력과 긴장으로 내면의 부정적인 정서를 미적으로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밀어내는 힘이 진정성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인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적 완성도를 의식하고 지나치게 잘 쓰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시적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슈퍼맨의 꿈」외 4편은 우선 재미있다. 그 재미는 부조리하고 무거운 삶과 일상을 경쾌하고 가벼운 어조로 웃게 만드는 반어적인 유희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 유희는 삶을 억압하는 거짓과 모순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을 통쾌하게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러나 충분히 육화되지 않아 장난스러워 보이는 표현과 태도가 가끔 눈에 띄었다.
「새는,」외 4편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면적인 정서에 새겨진 상처를 위무한다. 이 시들은 화려하고 세련된 표현은 없지만, 삶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객관적으로 응시하며 그것이 충분히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태도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것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강력하게 밀어 올리는 에너지가 다소 약해서 시가 밋밋해 보인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겠다.
논의된 네 분의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특징과 함께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한 작품을 단번에 고르기는 쉽지 않았으나, 결국 이향미씨의 작품을 대상으로 밀기로 하였다. 이향미씨의 대상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우수상을 수상한 세 분에게도 축하를 드린다.
이가림ㆍ김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