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바람과 詩(詩集)

술독은 놓고 가시구려

湖月, 2012. 3. 8. 16:35

 


술독은 놓고 가시구려 / 안행덕



부여케 피어나는 저녁 어스름

골목의 부산함도 사라진 시간

주정뱅이 장씨네 지붕 위, 흰옷 한 벌

술에 말린 짧은 혀 바람 되어

이승을 떠나 가나보다

평생 찌든 가난, 탁탁 털고 미련 없이

동굴 같은 지하 단칸 빠져나와

생전에 그리던 높은 빌딩

훤한 지붕에 올라

마음대로 밟아보고 얼쑤얼쑤 갔을까

평생 눈치코치 없다 쥐어박던 장씨부인

눈물 콧물 훔치며

소반에 사잣밥 한 공기, 간장 한 종지,

짚신 한 켤레, 지팡이 하나를 내놓으며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제는 가난 같은 것

하나도 무섭지 않을게요

술독은 놓고 가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