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스크랩] 나비 / 장석주

湖月, 2012. 6. 7. 21:30

 

나비 / 장석주

 

 


나비는 날아간다.
나비는 햇빛 속을 떠간다.
나비는 무게를 채 갖지 못한 가벼운 넋이다.
나비는 모든 소리를 인멸하고 떠가는 한 점 정적이다.
세상이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이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이 힘들다고 하지 않는다.
나비는 날아간다.
최루탄 가스 자욱하게 피어 있는 거리를 지나
땅거미 내린 어둔 땅을 지나
누군가의 버려진 무덤을 지나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을 지나
나비는 날아간다.
나비는 햇빛 속을 떠간다.
혼자 날아가지만
세상을 혼자 가는 것은 아니다.
지렁이랑, 개미랑, 게랑, 진흙뻘 속의 조개랑,
별과, 유령과, 바람과
함께 간다.
도무지 남을 해칠 줄 모르는 것,
세속의 아우성을 한 점 고요로 제압하는 것,
나비는 날아간다.
맹목의 겨울이 오기까지
나래를 펴고
나래를 찢겨
어느 산정에서 숨질 때까지
나비는 날아간다.
이승의 한 점 슬픔으로
나비는 햇빛 속을 떠간다.

 

 

 

출처 : 문학 한 자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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