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스크랩] 늙어가는 오후
湖月,
2012. 12. 3. 17:28
늙어가는 오후 / 호월 안행덕
안방에 누워 떨리는 눈으로
힘겹게 토방을 기어오르는
햇살 잡고 흔들어본다
한때는 탄탄한 토담 같던 육신(肉身)
비바람에 씻기어
흙으로 가려 헐리는 중이다
안방의 기척을 살피던
감나무에 걸린 까치밥
붉은 조등(弔燈)처럼 불을 밝히려 한다
몸 뒤집는 산 그림자
조용히 꼬리를 감추며
어둠이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만 있다
술독은 놓고 가시구려 / 호월 안행덕
부여케 피어나는 저녁 어스름
골목의 부산함도 사라진 시간
주정뱅이 장씨네 지붕 위, 흰옷 한 벌
술에 말린 짧은 혀 바람 되어
이승을 떠나 가나보다
평생 찌든 가난, 탁탁 털고 미련 없이
동굴 같은 지하 단칸 빠져나와
생전에 그리던 높은 빌딩
훤한 지붕에 올라
마음대로 밟아보고 얼쑤얼쑤 갔을까
평생 눈치코치 없다 쥐어박던 장씨부인
눈물 콧물 훔치며
소반에 사잣밥 한 공기, 간장 한 종지,
짚신 한 켤레, 지팡이 하나를 내놓으며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제는 가난 같은 것
하나도 무섭지 않을게요
술독은 놓고 가시구려
월간 문예지 [ 문학세계] 2012년 12월호 발표
출처 : 문학 한 자밤
글쓴이 : 湖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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