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손세실리아 시( 반뼘)
반뼘
손세실리아
무명 록 가수가 주인인
모 라이브 카페 구석진 자리엔
닿기만 해도 심하게 뒤뚱거려
술 쏟는 일 다반사인 원탁이 놓여있다
기울기가 현저하게 차이지는 거기
누가 앉을까 싶지만
손님 없어 파리 날리는 날이나 월세날
은퇴한 록밴드 출신들 귀신같이 찾아와
아이코 어이쿠 술병 엎질러가며
작정하고 매상 올려준다는데
꿈의 반뼘을 상실한 이들이
발목 반뼘 잘려나간 짝다리 탁자에 앉아
서로를 부축해 온뼘을 이루는
기막힌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반뼘쯤 모자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다
생의 의지를 반뼘쯤 놓아버린 누군가
행간으로 걸어들어와 온뼘이 되는
그런
통한다는 말
손세실리아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사람을 단박에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드물지
두고두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말 또한 드물지
그 속엔
어디로든 막힘없이 들고나는 자유로운 영혼과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위로의 손길이 담겨있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도 통한다하고
물과 바람과 공기의 순환도 통한다하지 않던가
거기 깃든 순정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사랑해야지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늑골이 통째로 묵지근해지는 연민의 말도 드물지
갑갑한 숨통 툭 터 모두를 살려내는 말 또한 드물지
한뼘도 안되는 반뼘의 생각으로 시를 쓴다는게 어렵지만
상실한 반뼘은 독자의 목이라며 채워줄 독자를 위해 시를 쓴다는 시인의
벼려깊은 시어에 잔잔한 감동이흐른다.
반뼘은 2009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로 선정되었던 시지요.
저마다 차고 넘치는 세상에 온뼘이 아니고 반뼘도 서로 받혀 주면 온뼘이 된다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