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아버지 우리아버지
湖月,
2005. 5. 9. 00:04
아버지 우리 아버지
- 안도현
아버지 벌판에서 돌아와
소주를 마십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소주잔
속에
수박 씨앗을 뿌리면서
어머니가 말립니다 왜 그래요 여보
그러면 떠내려간 것이 돌아오나요 기다려 봐요
한번만 더 참아요
네 여보
식물은 자라기 위해
물과 햇빛과 공기가 필요한데,
아버지 눈물도 흘리지 않으셨는데
웬 눈물을 모아 마시나요
소주를 자주 마시나요
이제 곧 수박이 열릴 거야
기다려봐
기다려보자
멀리서
빈 가슴만 남은
들판이
온통 젖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아버지의 소주잔 속에는
수박넝쿨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소주가
넘쳐
우리들 가장 서러운 데를 적시는데
등뒤에 홀로 벌판을 지고
아버지는 소주를 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