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여름 詩 모음

湖月, 2015. 8. 19. 22:05

<유월이 오면> - 브리지스

 

유월이 오면 난 그 때 온 종일

향기로운 잔듸밭에 그대와 나란히 앉아

산들바람 부는 하늘에 흰 구름 지어놓은

눈부신 높은 궁전으로 날아 오르리.

 

그대는 노래 부르고 나는 노래 지어주고

아름다운 시를 읽으려네.

우리 집 울안 풀 덤풀 속에 누워

오, 인생은 즐거워 유월이 오면.

 

 

<초여름 밤> - H. 헷세

 

하늘이 천둥합니다.

뜰 안에 서 있는

보리수 한 그루가 바르르 떱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번갯빛 하나가

둥그런 젖은 눈으로

연못 속에

파랗게 비칩니다.

 

하늘거리는 줄기에

꽃송이들 달려잇고

낫 벼리는 소리가

바람곁에 스쳐갑니다.

 

하늘이 천둥합니다.

무더운 입김이 지나갑니다.

나의 아가씨가 바르르 떱니다.

<여보, 그대도 느끼는가?>

 

 

 

 <감 각> - 랭보

 

여름의 아청빛 저녁, 보리 날 찔러대는

오솔길 걸으며 잔풀을 밟노라면

꿈꾸던 나도 발밑에 신선함을 느끼리.

바람은 내 맨 머리를 씻겨 줄 것이구.

 

아무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라.

그대는 끝없는 사랑 넋 속에 차오르리니

방랑객처럼, 멀리 멀리 나는 가리라.

여인 데리고 가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다시 한 번> - 쉬토름

 

다시 한 번 내 무릎에 떨어지는

정열의 빨간 장미 꽃송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파고드는

소녀의 아름다운 그 눈망울.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메아리치는

소녀의 거센 한숨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유월의 뜨거운 여름 바람.

 

 

<당신 곁에> - 타고르

 

일손을 놓고

잠시라도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잠시라도 당신을 못 보면

내 마음 안식을 잃고

고뇌의 바다에서 내 하는 일

모두 한없는 번민이 되고 말아요.

 

불만스런 낮, 여름이 한숨 쉬며

지금 창가에 와 머물고 있어요.

꽃 핀 나뭇가지 사이 사이에서

꿀벌들이 잉잉 노래 부르고 있어요.

 

임이여, 어서 당신과 마주 앉아

목숨 바칠 노래 부르고 싶어요.

신비로운 침묵 흐르는

이 한가로운 시간에.

 

 

 

 

<들 장 미> - 괴에테

 

사내아이는 보았네,

들에 핀 장미를

그 아침처럼 싱그럽고 아름다움을

가까이가서 잘 보려고

사내아이는 보았네, 기쁨에 넘쳐.

장미여, 장미여,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사내아이는 말했네 내 너를 꺾을테야,

들에 핀 장미를.

장미는 말했네, 꺾기만 해봐라 찌를테야.

언제까지나 잊지 않도록

나도 꺾이고 싶진 않은 것을

장미여, 장미여,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난폭한 사내아이는 꺾었네.

들에 핀 장미를.

장미는 거절하며 찔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봐도 소용없는 것을 --

장미는 꺾이고 말았습니다.

장미여, 장미여, 붉은 장미여

들장미여.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힌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바다가 그리워> - 메이스필드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그 호젓한 바다 그 하늘로.

내 바라는 건 다만 키큰 배  한 척과

방향을 잡아줄 별 하나

그리고 바다 위의 뽀얀 안개와

뿌옇게 동트는 새벽뿐.

 

나는 다시 바다로가련다. 조수가 부르는 소리

세차고 뚜렷이 들려와 나를 부르네.

내 바라는 건 다만 힌구름 흩날리고

물보라 치고 물거품 날리는

바람 거센 날, 그리고 갈매기의 울음 뿐.

 

나는 다시 바다로 가련다.

그 떠도는 집시의 생활로 

갈매기 날고 고래가 헤엄치는

칼날같은 바람부는 바다로.

 

내 바라는 건 다만 낄낄대는 방랑의

친구녀석들이 지껄이는 신나는 이야기와

오랜 일 끝난 후에 오는

기분 좋은 잠과 달콤한 꿈일 뿐.

 

 

 

<귀> - 콕토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소리 그리워라.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초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깃대 끝에

애수는 백마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여름의 초상> - 헵벨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피어잇는 걸 보았다.

그것은 금새 피라도 흘릴 것만 같이 붉었다.

뜸해진 나는 지나는 길에 말했다.

인생의 절정은 죽음에 가까운 것이라고 ---

 

바람의 입김조차 없는 무더운 날

다만 소리도 없이 힌 나비 한 마리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날개짓 공기가 딱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장미는 그걸 느끼고 그만 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