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湖月,
2011. 9. 1. 16:39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1946년 서울 출생
연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1968)으로 문단에 데뷔
인간의 죽음과 유전이 만들어내는 허무적 삶의 인식을
탁월한 시적 감수성과 주술적 리듬에 담아 노래하는 시인
시집 "풀잎" "소리집" "바람의 노래"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벽 속의 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