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은빛 바다와 노파
湖月,
2020. 5. 23. 18:24
은빛 바다와 노파 / 안행덕
비릿한 냄새가 옮겨붙은 자갈치 골목
노파의 등처럼 구부러진
은빛 바다가
벌거벗은 채 좌판에 앉아있다
벌거벗은 바다를 구경 온 사람들
골목마다 항구처럼 돛을 내리고
온종일
바다를 몰고 온 바람과 실랑이다
부력을 잃어버려 파닥거림 없는
등 굽은 바다
꼼짝 못 하고 할머니 손끝에서
그물에 갇히듯 장바구니에 담긴다
하루 치의 자릿세를 셈하는 등 굽은 노파
떨리는 굽은 손가락 사이로 금쪽같은
파란 지전이
지느러미처럼 파닥이며 빠져나간다
살풀이춤 / 안행덕
저승에 들지 못한 살이 낀 가련한 영혼
고고성으로 왔어도 바람처럼 가는 인생
알량한 사랑 한 줌에 인연의 끈 놓지 못하고
가슴에 맺힌 매듭 그 질긴 끄나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한을 누가 지우랴
어깨춤은 절렁거리다 얼러주고
끊어질 듯 이어주는 살풀이장단에
춤꾼의 손끝에서 몸부림치는 한 맺힌 영혼아
하얗게 비운 마음 소복으로 나선 춤꾼
애원의 눈빛 간절함을 허공에 걸어놓고
움직일 듯 말 듯 어깨춤이 흥을 부른다
가느다란 손끝에 감긴 하얀 수건
맺고 푸는 능란한 기교가
슬픔을 환희로 승화시켜 주는데
살풀이장단의 곡조가 애절히 운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라 하며
마디마디 맺힌 한恨을 풀어내는 춤사위
자진살풀이장단으로
늘어졌다 휘도는 긴 수건 하늘을 울리고
가녀린 어깨춤은 관중을 사로잡는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 같은 하얀 몸짓 간곡하다
* 살풀이 춤 -중요 무형문화재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