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은행나무병 / 김이삭
湖月,
2009. 7. 19. 12:23
은행나무병 / 김이삭
빚이 많은 나는 은행나무만 봐도 가슴이 조여온다
나무가 내미는 연초록 이파리가 지폐였으면 한다는
어느 시인의 詩처럼 저 나무가 나의 통장 잔고였으면 한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내 몸은
나락으로 흩어지고 떨어진다
자주 울리는 전화의 발신처는 신용카드회사이거나 은행
그럴 때마다 내 몸은 미처 바꾸지 못한
無料貨幣처럼 쭈그려 든다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달아날 수 없는 마음이 검게 탄다
-왜 그렇게 살았냐
딱딱한 은행전화번호는 끝없이 신호를 보낸다
이 현실을 탈출하고픈 나는 극장으로 숨어든다
눈을 감고 밀리언즈*를 본다
기차가 초록들판을 달린다, 나도 달린다
불안증세가 나아졌다, 영화는 나를 편하게 끌고 달렸다
영화에서 돈가방이 떨어졌다
사람들 눈치도 보지 않고
맨 먼저 그 가방을 들고튀었다
-오늘 고객님이 약속한 입금일입니다
불이익이 없도록 즉시 입금 부탁드립니다
기다렸던 은행원이 극장 출구에서 끈질기게 따라온다
또 숨이 막혀 온다
시집 <베드로의 그물> 2009. 책나무, 시창
김이삭(본명. 김혜경)시인
경남 거제 출생
2005년 시와시학 가을문예 「전어」외 4편으로 등단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타임캡슐을 찾아라」당선
2008년 제2회 <시와창작> 문학상 수상
현재 전파 전교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