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적막강산 / 백석

湖月, 2015. 7. 7. 21:19

 

 적막강산 / 백석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소리 속에 나 홀로

 

定州 東林 구십여 리 긴긴 하루 길에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이형기 / 비

 

                                               

적막강산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일모......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빗속에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과 불안

 기대와 허무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리니

아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