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月, 2016. 6. 29. 10:36


그림자

그대는 나의 빛

천 년을 살아도 나는 어두운 그림자

내가 살 수 있는 곳은 오직 그대 등 뒤

 

눈감으면 아득한 세상이 내 것이고

머나먼 나라도 내 것인데

완벽한 자유를 찾아 떠나려면

이미 빛은 나를 먹어버리고

어두운 밤이 되는 것을

한 번도 그대 앞에 서, 본적 없어라

 

누가 보든 말든

마음대로 탁본을 뜨고

흉내를 잘 내다가도 빛인 그대가

휘장을 내리고 어둠을 부르면

아~

가장 낮게낮게 엎드려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설움

가끔은 그대 발굽에 밟힌 내가

한 무더기 분노로 어둠을 부르기도 하지

 

 

순천만 갈대밭에서

 

갈대숲을 가로 지른 외길

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인연

갈대 사이 발발발 기어가는

작은 새끼 게 한 마리

빨간 등딱지에 쪼그만 발

하도 귀여워 가만히 만져 보고 싶었지만

행여나 잡힐까 쪼끄만 게 발은

어찌나 잽싸게 달아나는지

눈으로만 따라가 보았다

갈대숲에 숨어버린 손톱만 한 게 한 마리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기다림이 지쳐 그리움 되고

갈대숲 겨드랑이 사이를 훔쳐보는 이 마음

아쉬움 한 덩어리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짱뚱어 한 마리 메롱 하며 꼬리를 흔든다

 

 

 

무인도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사방을 둘러 봐도 검푸른 짠물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고

풀 한 포기 살지 못하는 삭막한 가슴

망망한 바다에 갇힌 무인도처럼 

적막하고 쓸쓸해라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라면

철썩이는 해조음 따라

달빛이 내려오고 

별빛 소나타 들리겠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라면

무인도에 갇혀도 좋겠네

 

누가 노래를 불러 주나

누가 사랑을 해주나

기다리지 말자 행복을 심자

메마른 내 작은 가슴에

풀 한 포기 심어도 좋겠네

파랑새 한 마리 키워도 좋겠네

기다리며

바람 같은 구름 같은 떠돌이

일탈에 익숙한 나그네

무엇이 필요하랴

내 마음 믿어주는 사랑 하나면 족하리

얼었던 그 마음 봄눈 녹듯 풀리면

연둣빛 새순으로 피어나게

싹 틔울 꽃씨 하나 내 맘에 묻어두고

기다리며 그리워하리

라일락 향기에 바람 불어 좋은 날

메마른 그 마음 햇솜처럼 부풀어

사랑꽃 피어라

아지랑이 같은 사랑 흔들리게

씨앗 하나 심으렴

노을

 

서녘 하늘에 걸린 너의 심장

나를 전율케 하는 장밋빛 하트

붉은 울음이

하늘도 산도 호수도 함께

오열하게 하는구나 

온통 장밋빛 사랑이구나

산을 허물고 허공을 물들인

붉은 노을처럼

감춰 둔 아픔까지 다 쏟아 놓은

깊은 사랑 짧은 생을

서녘 하늘에 걸어 놓았구나

다람쥐

 

 

늘 두려운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동동 휘리릭 달아나는 작은 몸집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울음 한 덩이

후다닥 받아먹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가버리는 너

 

수많은 추억을 낙엽 속에 감춰두고

숨바꼭질로 하루를 견디던 외톨박이

 

문득 내 유년을 물고 달리는

너를 따라

흘러간 세월을 더듬어 달리는 나

그림 같은 추억의 숲,

안갯속에서 헤매게 하네

숨바꼭질하자 하네

 

베론쥬빌

  

나를 무참하게 사육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한순간 빗나간 화살이 꽂힌 곳

그대는 아는가

용수철처럼 튀는 핏방울

그대는 보았는가

극과 극이 부딪혀 생긴 실금 

균열에서 새어 나온 탄식을 

그대는 듣고 있는가 

 

풀릴 기미 없는 엉킨 실타래는

누가 풀어야 하나  

괴로움 숨기려 하니

비좁은 가슴 더 좁아터지고

부르르 떨기만 하는 저 가련한 영혼

 

오~

바람아 불어라

내 눈물 마를 때 까지

흘러간 것들

 

 

화려한 양장지에 묵직한 언어를 담고

당당히 꽂혀 있어도 죄스런 표정의 책들

갈채 받던 그 날들 어디로 가고 

칙칙한 서재에 갇혀 늙어가는

고서(古書)의 표정을 닮아 가는 나

 

젊은 날을 그리워하며

이도 저도 아닌 삶이 초조해

급해진 마음,

넘어지고 자빠지고

수척한 밤을 헤매느라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채

날이 새고 말았구나

 

​벽마다 새겨진 초침 소리에

시들어 말라 버린

시상식에서 받은 꽃다발처럼

향기도 빛깔도 다 잃어버리고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마른 잎새처럼

시든 꽃의 낯빛을 닮아 가는지

삼신할미 손도장 찍는 날

  

우주 어디선가 만난 적 있을지 모를  

귀한 인연으로 내 안에 들어온 너 

해독한 암호처럼,

닫힌 내 몸 열고 나오네  

뼈가 으스러지는 듯 아픈 통증

참으려고, 옷자락 불끈 쥐고 떨며  

산고를 참아낸 신비의 탄생에

눈물 흘리며 너를 만났지  

 

어서 나가라 엉덩짝에 푸른 손도장  

삼신할미 밀어낸 손자국, 멍들어도 

너와 나 전생에 맺은 언약을 지키는 날 

 

억겁의 인연으로 맺은 우리 사랑은 

몽골반점 아니어도 천생의 인연이요 

고고성 아니어도 내 영혼 흔들렸어 

 

 

천사

  

천사는 하늘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얀 날개를 달고 보이지 않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神인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보고 싶고 궁금한 천사

우리 아들이 내게 보내왔습니다

가만히 안아보면

깃털처럼 부드럽고 포근합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조그만 얼굴

나를 보고 웃을 때는

해맑은 봄볕처럼 따스합니다.

 

초라해지고 가난으로 허기진 나를

짜릿한 사랑으로 가슴 설레게 하고

모든 근심을 날려버려 줍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가슴이 쿵쿵 뛰는 행복입니다

바로 천사가 나에게 왔습니다

천사 2

방안에서

아기 울음

데구루루 굴러 나온다

젖은 손 닦고 달려온 어미

울음 안고 가만가만 다독이면

어느새 

어여쁜 마음 지어내는 천사

평화가 옹알이로

햇살처럼 구른다

나긋이 흔들리는 어미의 미소

이슬 머금은 함박꽃이다

바람 따라 가리라

  

푸른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별이 오는 줄도 모르고

바람과 수다를 떨던 잎새들

예기치 못한 폭우에 찢긴 가슴

팔딱거리는 새가슴으로

계절이 때리는 죽비를 맞고

숨죽이며 날아가는 가여운 작은 새

 

한여름 태양에 들끓던 젊은 피는

황혼빛으로 시들고

미풍에도 흔들리는 초라한 낙엽이라도

심장에 새겨놓은 바람의 탁본을 들고

부끄럽지 않게 가려 하네

 

시들은 젊은 피 꽃처럼 붉게 물들고

유서 같은 단풍잎 저들끼리 흐느끼는데

어쩌랴 이별이란 아픈 걸

마음에 담아둔 죄 낙엽으로 날리고

손 흔들며 가리라 바람 따라가리라

 

낙엽과 나 

허공에서 맴돌며 연연해하던 너

안타까움을 접고 야윈 몸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바닥을 구르며 바스락거리는 것은

아프다고 절규하는 소리

너를 보는 내 눈이 젖는 것은

떠나는 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란다

사부작이 몸 비틀며 구르는 저 낙엽

긴 여름 나무에 매달려 참았던 울음

은유로 고백하는 중이란다

서럽게 울지 못하고 속으로 우는 울먹임

그 서러운 여운에 나를 묻고

나뭇가지 끝에 걸린 내 아린 손톱을 본다

금방 내 발등으로 떨어질 것 같은

대롱거리는 설움

기약 없이 에돌아 우는 바람 때문에

놀라워라. 내가 낙엽이 되어 가다니

 

 

낙엽은 지고

 

고운 옷 갈아입은 단풍을 시샘하는

밤새 내린 찬 서리에

방황하는 바람 따라

수많은 사연처럼 낙엽은 지고

 

사랑하는 사람들

머물고 싶은 젊은 날들은 가고

만나고 돌아서도 그립기만 한 날에

높은 하늘이 야속한 단풍 같은 심사 

 

내 마음속 수채화 한 폭

팔랑팔랑 떨어지는 계절

아픈 이별 시들어 떨어지는 날

낙엽 같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낙엽이 되어

 

 

쓸쓸한 가을 오솔길

소리 없는 울음이 굴러갑니다

한겨울 삼 동을 견뎌내려고

제 살붙이를 떨구는 나무

굳이 가을을 탓할 일은 아니지

생의 경계를 넘어 속살까지 붉은 상처,

빛바랜 수척한 하늘 아래

잘 배색 된 날개를 흔들며

해 질 녘 외롭게 떨어지는 잎새

쉬어갈 자리를 잃은 바람

나를 붙들고 잉잉 울고 갑니다

텅 빈 마음 주체하지 못하던 나

바람 따라 길을 나선 게

낯선 거리를 서성이는

외로운 방랑자 되어 노숙합니다.

푸른 젊은 날은 몰랐지요

이별이 얼마나 서러운지

가을이 얼마나 외로운지

 

가을날에는

 

멀어진 하늘이 야속해서

낙엽 쌓인 그 길

혼자서 걷고 싶어라

마들가리 외로운 가을 길

장난스럽게 구르던 낙엽이

빈 벤치에 앉아 내게 손짓을 하네

벌써 또 가을이 지고 있구나

무성하던 잎새는

어느새 가을 따라갈 채비를 하네

멀어진 하늘이 섭섭해서

엷어진 햇살이 더 섭섭해서

추억 한 줌 슬픔 한 줌

다 내려놓고

그리운 이에게 그냥

보고 싶다 말할까

이별의 계절

 

이별의 엽서를 쓰고 있는 마른 가지

비단 같은 안개가 둘둘 말아 토닥이고

오늘도 어제도 혼자였던 기억들

낙엽처럼 뒹굴고 있는 날

성큼성큼 걸어가는 가을처럼

바람 따라 가버린 사랑아

가을엔, 약속하지 말자

 

떠나는 나뭇잎도 보내는 나무도

모두가 이별의 노예가 된

이 가을엔,

​쓸쓸한 고독이 가지마다 둥지를 틀고

이별의 전염병 소문처럼 번지는 계절 

 

들꽃도 나뭇잎도 헤어지기 싫어서 

살랑살랑 천천히 손 흔드는

이 가을엔,

우리 약속하지 말자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

                  

은은한 향 그윽한 찻잔에

가을을 타서

같이 마실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 아니어도

노을빛 닮은 낙엽처럼 내게

철없이 쉼표를 찍는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다

향기 가시지 않은 은근함으로

모지라진 아픔을

흐르는 시냇물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풍경화 같은 사람 만나고 싶다

낭만을 위하여 고독을 위하여

떨어지는 낙엽을 위로해 줄줄 아는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다

내 푸념을 들어주고 내 수다에 박수를 치는

그런 사람 만나

투명한 웃음을

가을 하늘에 날리고 싶다

 

 

 

겨울 걱정

 

 

어둠을 슬며시 밀어내며  

묵묵한 돌담에 내려온 달빛 아래

겨울을 걱정하는 귀뚜라미  

애절한 울음소리에  

돌담에 기대선 단풍나무  

툭툭 흘리는 붉은 눈물 

 

겨울 채비로  

마음 급한 풀벌레 베틀에 앉아  

딸각딸각 바디질 소리 

겨울을 걱정하는 마음   

달빛을 재단하며 가을 깁는다

 

 

오류

 

 

분명히 확인에 화살표를 얹어 놓고

집게손가락으로 클릭했는데

확인이 안 된다.

똑똑한 컴도 가끔 오류가 난다

  

마음 한 자락 걸어둘까 거둬 버릴까 망설이다

마음먹고 꼭 찍어 클릭했는데

확인이 안 된다.

너와 나 사이에도 오류가 발생했나 보다

  

끊긴 필름처럼 조각난 인연

밤새 허우적댈 때마다 얼마나 아찔했는지

이 오류를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