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쥐불 / 고재종
湖月,
2017. 2. 23. 23:47
쥐불 / 고재종
고구려고구려
하늘로 연기가 오르네
삭풍설한 헤치고 들은 또 열렸네
이 봄 외로운 것이
어디 논둑 밑의 애기쑥뿐이랴
는개빛에 가린 먼 산 보고
내일을 꿈꾸는 짓 삼가니
어디서 길게 길게 황소가 우네
생애의 마지막 꽃이었던
닷마지기 논을 빛잔치로 날려버리고도
몸의 근력 삭이지 못한 외로움,
그리하여 이 봄 다시
하늘로 곧은 연기 피워올릴 수 있다면
꽃샘바람이 불고
이월 장독대 터진다 해도
저 푸르른 기도 타고
영등할매 하늘로 오르고
또 하늘의 속삭임 내려와
다시 씨 뿌릴 수 있다면
우리 어디 탄식할 수나 있으랴
연기는 다시 오르고
삶은 고뇌의 포즈에 있지 않고
봄눈 터져도 굽은 등 또 구부리니
어디서 길게 징소리 울리네
시집 <날랜 사랑> 창비.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