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천상병 詩

湖月, 2015. 8. 9. 20:42

 

귀천(歸天)

 

                  천 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약속

 

             천 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얼 기다리고 있다

 





             천 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가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 상병, 1930, 1, 29 1993, 4, 28

호는 심온(深溫)

일본 효고 현 히메지 출생

시인

1949, 문예 '갈매기'등단

1955,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중퇴

1967,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음

2003, 은관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