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화전풍경 /문학도시 9월호

湖月, 2016. 9. 12. 17:27




 

화전 풍경(火田 風景)

                        안행덕

​​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맥 끝자락

​천둥과 비바람 백 년을 흔들어도

하얀 구름모자 삐딱하게 쓰고

낡은 집 한 채

핼쑥한 낯빛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

빛바랜 사진첩인 양 

 

촘촘한 너와(瓦) (木) 사이마다  

비릿한 생선 비늘 같은 ​너와 지붕

​푸른 이끼로 세월을 새겨 넣고

허기진 가난과 고난의 이력을

역사처럼 펼쳐놓은 회색빛 풍경

풀잎 스쳐 간 벌레들 울음소리

물 한 방울 흘러간 흔적까지 선명하다 ​ 

 

짓궂은 바람의 어릿광대에, 반쯤 열린 문짝

추억처럼 묶어둔 역사 한 페이지

시큰거리고 덜컹거리는 무릎으로 ​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기우뚱 엉거주춤 

​너와집 한 채 쓰러질 듯 서있다 

주인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보랏빛 엉겅퀴꽃 한 발 들여 민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 안행덕

 

 

갈대숲을 가로 지른 외길

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인연

갈대 사이 뻘에 발발발 기어가는

작은 새끼 게 한 마리

빨간 등딱지에 쪼그만 발

하도 귀여워 가만히 만져 보고 싶었지만

행여나 잡힐까 쪼끄만 게 발은

어찌나 잽싸게 달아나는지

눈으로만 따라가 보았다

갈대숲에 숨어버린 손톱만 한 게 한 마리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기다림이 지쳐 그리움 되고

갈대숲 겨드랑이 사이를 훔쳐보는 이 마음

아쉬움 한 덩어리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짱뚱어 한 마리 메롱 하며 꼬리를 흔든다

 



월간 문학 문학도시 2016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