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화전 풍경 / 부산시단

湖月, 2017. 5. 31. 12:47


화전 풍경(火田 風景) / 안행덕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맥 끝자락

​천둥과 비바람 백 년을 흔들어도

하얀 구름모자 삐딱하게 쓰고

낡은 집 한 채

핼쑥한 낯빛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 


촘촘한 너와(瓦) (木) 사이마다  

비릿한 생선 비늘 같은 ​너와 지붕

​푸른 이끼로 세월을 새겨 넣고

허기진 가난과 고난의 이력을

펼쳐놓은 회색빛 풍경

달빛에 서러운 벌레들 울음소리

물 한 방울 흘러간 흔적까지 선명하다  


짓궂은 바람의 장난에, 반쯤 열린 문짝

시큰거리고 덜컹거리는 무릎 ​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기우뚱 엉거주춤 

​너와집 한 채 쓰러질 듯 서있다 

주인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보랏빛 엉겅퀴꽃 한 발 들여 민다 


계간 부산시단 2017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