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당선작 / 풍경 재봉사 / 김민철

湖月, 2012. 1. 2. 16:26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풍경 재봉사 / 김민철


수련 꽃잎을 꿰매는 이것은 별이 움트는 소리만큼 아름답다

공기의 현을 뜯는 이것은 금세 녹아내리는 봄눈 혹은

물푸레나무 뿌리의 날숨을 타고 오는 하얀 달일까

 

오늘도 공기가 휘어질 듯하게 풍경을 박음질하는

장마전선은 하늘이 먹줄을 튕겨놓고 간 봉제선이다

댐은 수문을 활짝 열어 태풍의 눈에 강줄기를 엮어준다

 

때마침 장맛비는 굵어지고, 난 그걸 풍경 재봉사라 부른다

 

오솔길에 둘러싸인 호수가 성장통을 앓기 전,

빗방울이 호수 가슴둘레를 재고 수면 옷감 위에 재봉질한다

소금쟁이들이 시침핀을 들고 가장자리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흙빛 물줄기들은 보푸라기의 옷으로 갈아입고

버드나무 가지에서 밤새 뭉친 실밥무늬가 비치기도 했고

꾸벅 졸다가 삐끗한 실밥이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풍경 재봉사의 마지막 바느질이 아닐까

 

주먹을 꽉 쥐려던 수련의 얼굴로 톡 떨어지는 물방울

 

수련꽃이 활짝 피어 호수의 브로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