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湖月, 2005. 5. 5. 08:44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낱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고재종 시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에서-

 

# 강에는 넉넉한 물이 세월처럼 흘러야 하는 것,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새까만 암죽으로 끊어서

우리에게 오던 강물도 하염없다.

강물도 그리움으로 야위어 가는가.

그대와 같이 걷던 강길

오늘은 홀로 걸으며 그리움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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