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 5

달빛을 등에 지고 / 안행덕

벽조목과 명장 / 안행덕 ​벽조목과 명장의 한판의 씨름이 시작된다숨 막히는 순간이다​벼락을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이미 사리 되어 칼끝을 저항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 장인의 손을 희롱한다 ​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는 수술대에 누운 아기를 다루듯 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벽조목도 순해지는데 ​어려운 수술 끝에 행운의 길을 여는 순간 조각칼을 쥔 명장의 손이 찌릿하다 지뢰의 뇌관을 건드린 듯 등줄기에 진땀이 난다

시선집 2024.11.17

달빛을 등에 지고 / 안행덕

을숙도 현대 미술관 / 안행덕 ​가상 사운드 뮤직실, 천장에서 내려온 줄과 바닥의 종이 상자, 연결된 암호들이 음표를 만들며 내통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이 얇게 바르르 떨면 상자의 입술이 빗소리를 만들어 낸다. 빗소리라는 문자를 눈에 담고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는다. 부드러운 강바람 불어오고, 음향은 점점 커지는데 처음에는 빗소리 바람 소리 그 사이에 시든 꽃이 떨어지고 수십만 개의 소고 소리 점점 크게 울리는데 나는 큰 북을 치며 빗속에 젖어 든다. 내가 운다. 빗속에 젖어 울고 있는 나,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소복의 어머니, 손을 내밀자 천둥 치고 번갯불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뜬다. 큰 북과 작은북은 간 곳 없고, 가느다란 줄이 종이 상자를 흔들고 있다.

시선집 2024.11.17

달빛을 등에 지고 / 안행덕

나의 마일리지  눈물에도 마일리지가 있다 눈물은 공짜가 없으니까 누구는 마일리지 포인트로 미국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는데 나는 눈물의 마일리지로 사랑을 샀다 항공권 특별 카운트 서비스로 주는 포인트를 적립하면 지구를 반 바퀴 돌지만 평생 쌓은 나의 눈물의 마일리지 사랑의 특별 카운트 왜 몰라주나  눈물로 침묵으로 저장된 인생 카운트 나의 삶 나의 추억이 쌓인 포인트 점수 나 혼자 간직한 마법의 포인트 점수는 지구 반 바퀴보다 먼 나의 한평생​​ 비파를 켜는 그녀​​잠이 달아난 동짓달 긴긴밤 낡은 기와집 지붕에 매달린 바람처럼 싸늘한 초승달 눈치를 살필 때 무심한 달팽이관을 흔드는 비파 소리심금을 울리는 저 소리 생의 그물처럼 긴급 타전으로 나를 가두네 모스부호처럼...... ​비파나무에 걸린 별똥별은 잘 ..

시선집 2024.11.17

아바타 지우기

아바타 지우기 / 호월 안행덕​​노란 울음이 지친 듯 붉은 얼룩으로 변해 가는데숲의 웅성거림은 나를 보고 키득거린다​멀쩡한 잔돌 툭툭 발길질해대도체머리 설레설레 흔들어 봐도상처의 기억은 꼬리를 문다​오래전 삼킨 울음이 살아서봉인을 뜯고 들썩거린다​고막을 염탐하는 모스부호 거추장스러운 기억은 삭제하라타닥 타다닥 암호로 타전된다​응답에 접수된 필름재빨리 명령에 복종하니흘러간 다큐멘터리 한 편휘리릭 바람 따라 사라진다.​​​시집 『아담의 진실』에서​​​​​​​​​​

湖月 안행덕 제9 詩集

아담의 진실 / 2부 비파를 켜는 그녀​​잠이 달아난 동짓달 긴긴밤 낡은 기와집 지붕에 매달린 바람처럼 싸늘한 초승달 눈치를 살필 때 ​무심한 달팽이관을 흔드는 비파 소리심금을 울리는 저 소리생의 그물처럼 긴급 타전으로 나를 가두네 모스부호처럼 ​비파나무에 걸린 별똥별 잘 익은 비파 열매와 연애를 할 때 죄 없는 성장통을 울리던 비파를 켜는 그녀가 거기에 있네 ​ 풀꽃 ​아침 등산 길 산모퉁이에서 만난 ​홀로 핀 꽃잎 하나참 쓸쓸하다 ​온종일 빈 하늘 보며 무슨 생각 저리 할까​​꽃그늘 ​복사꽃 그늘 아래 다람쥐 한 마리 ​떨어지는 꽃 잎에 화들짝 놀란다​해님도 더 놀랐는지구름 뒤에 숨는다  ​탓하지 말자​​바람이 불어도 세월이 흘러도 탓하지 말자 다 제 할 일을 하고 있단다​비가 내리는 것도 가뭄이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