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행덕 시 세계 17

을숙도 현대 미술관

을숙도 현대 미술관 / 안행덕​​가상 사운드 뮤직실, 천장에서 내려온 가느란 줄과 바닥의 종이 상자들 연결된 암호들이 음표를 만들며 내통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이 얇게 바르르 떨면 상자의 입술이 빗소리를 만들어 낸다. 빗소리라는 문자를 눈에 담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강바람 불어오고, 음향은 점점 커지는데 처음에는 빗소리 바람 소리뿐 그 사이에 시든 꽃이 떨어진다. 수십만 개의 소고 소리는 점점 크게 울리고 ~ 나는 큰 북을 치며 빗속을 걸어 간다 내가 운다. 빗속에 젖어 울고 있는 나,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소복의 어머니, 손을 내밀자 천둥 치고 번갯불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뜬다. 큰 북과 작은북은 간 곳 없고, 가느다란 줄이 종이 상자를 흔들고 있다​​​​경북일보 문학대전 제7회 은상 수..

백치여서 다행이다

백치여서 다행이다 / 호월 안행덕​나의 방황은언제나 바다 앞에서 시작되는데어쩌면 길 잃은 여행의 시작이다 파도의 음계는 언제나 오독으로나를 당황하게 만들고무작정 이정표 없는 길을 걷게 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아무 거리낌 없이죽어가고 태어나는 생명을 보라그들은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다 밤마다 향초를 켜고 두 손 모아 번제燔祭를 올리는제사장의 간절함을 너는 아는가 다만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나백치여서 다행이다   ​목탁새 / 호월 안행덕​이른 아침부터 참회하고 참선이라도 하는지숲속에 청아한 목탁 소리목탁 치며 염불하는 너는 누구냐 무슨 사연 그리 깊어죄 없는 나무를 쪼아대며 애절히 하소연하느냐 그토록 간절한 발원이라면 부처인들 돌아보지 않을까 새야 새야 목탁 새야 저 ~ 나무속 깊이 파고 들어가연화좌蓮花座..

백치여서 다행이다

백치여서 다행이다 나의 방황은언제나 바다 앞에서 시작되는데어쩌면 길 잃은 여행의 시작이다  파도의 음계는 언제나 오독으로나를 당황하게 만들고무작정 이정표 없는 길을 걷게 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아무 거리낌 없이죽어가고 태어나는 생명을 보라그들은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다 밤마다 향초를 켜고 두 손 모아 번제燔祭를 올리는제사장의 간절함을 너는 아는가  다만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나백치여서 다행이다​  목탁새​이른 아침부터 참회하고 참선이라도 하는지숲속에 청아한 목탁 소리목탁 치며 염불하는 너는 누구냐 무슨 사연 그리 깊어죄 없는 나무를 쪼아대며 애절히 하소연하느냐그토록 간절한 발원이라면 부처인들 돌아보지 않을까 새야 새야 목탁 새야 저~ 나무속 깊이 파고 들어가연화좌蓮花座라도 틀고 앉으려 하느냐 ​네 목탁..

갯그렁 같은 여자 / 호월

갯그령 같은 여자 / 호월 안행덕​​밋밋한 것 같아도 성깔 있는 여자바닷가 모래벌판을 맨발로 걸어도청여淸女처럼 서늘한 게 신비스러워 눈부시다 바닷가를 거닐다 전사구를 만나면제집인 양 편안하게 신발을 벗고마음을 풀어헤친다 ​ 절박한 삶을 위하여짠물에 젖어 비늘처럼 거칠어진 생갯그령처럼 나도바닷바람에 여유롭게 흔들리고 싶네 ​​​​​시집『빈잔의 자유』에서​​

징검다리 / 안행덕

징검다리 / 안행덕  멈출 수 없는 세월에 뒤질세라쉬지 않고 흐르는 물도가끔은 머뭇거린다.물 위에 문신처럼 새겨진 돌을 만나면저도 모르게 순해지는데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징검돌의부르튼 발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른 발이 젖지 않고징검징검 밟고 가라고제 몸 통째로 제물로 바치고 침묵하며흐르는 시냇물에 맨발을 숨긴 돌 물 위의 표정은 태연한척하지만물살에 헌(傷處) 발은 상처투성이다통증으로 절룩거리면서도제 소임을 다하려고 ​나란히 서 있는 친구 손을 붙들고물살에 떠내려가지 않으려 부르르 떤다​​ 2015년 ~ 새부산 시협 작품상 ​​

벽조목과 명장

벽조목과 명장 / 안행덕​벽조목과 명장벽조목과 명장의 한판 씨름이 시작된다 ​숨 막히는 순간이다벼락을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 이미 사리가 되어 칼끝을 저항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 장인의 손을 희롱한다 ​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는수술대에 누운 아기를 다루듯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벽조목도 순해지는데 ​어려운 수술 끝에 행운의 길을 여는 순간 조각칼을 쥔 명장의 손이 찌릿하다 지뢰의 뇌관을 건드린 듯 등줄기에 진땀이 난다 ​2019년 8월 새부산 시협 작품상   ​

을숙도 현대 미술관

을숙도 현대 미술관 / 안행덕 ​가상 사운드 뮤직실, 천장에서 내려온 가느란 줄과 바닥의 종이 상자들 연결된 암호들이 음표를 만들며 내통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이 얇게 바르르 떨면 상자의 입술이 빗소리를 만들어 낸다. 빗소리라는 문자를 눈에 담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강바람 불어오고, 음향은 점점 커지는데 처음에는 빗소리 바람 소리뿐 그 사이에 시든 꽃이 떨어진다. 수십만 개의 소고 소리는 점점 크게 울리고 ~ 나는 큰 북을 치며 빗속을 걸어 간다 내가 운다. 빗속에 젖어 울고 있는 나,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소복의 어머니, 손을 내밀자 천둥 치고 번갯불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뜬다. 큰 북과 작은북은 간 곳 없고, 가느다란 줄이 종이 상자를 흔들고 있다​​​​경북일보 문학대전 제7회 은상 수..

벽조목과 명장 / 호월 안행덕

벽조목과 명장 / 호월안행덕  벽조목과 명장의 한판 씨름이 시작 된다숨 막히는 순간이다 벼락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 이미 사리가 되어 칼 끝을 저항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장인의 손을 희롱한다  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는 수술대에 누운 아기를 다루듯 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 벽조목도 순해지는데  어려운 수술 끝에 행운의 길을 여는 순간 조각칼을 쥔 명장의 손이 찌릿하다 지뢰의 뇌관을 건드린 듯 등줄기에 진땀이 난다   경력 2005년 시와창작으로 등단 부산 시인협회 회원. 금정문인협회 감사. 청옥문학 자문위원푸쉬킨 문학상 시 수상. 황금찬 시문학상 수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수상

서러운 손톱 / 호월 안행덕

서러운 손톱 / 호월안행덕​​내 서러움 먹고 돋아나는 손톱이 미워서잘근잘근 씹으면 까무룩 해지고맥없이 무너지며묵은 슬픔이 하얗게 잘려나간다 손끝마다 매달린 철없는 욕심내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절규하며토막토막동강 나는 내 살점이 아프다고 아리게 운다 감각이 없는 듯 잘려나가는 손톱툭 하고 외마디로 살아있다고 한마디 하며핏기없는내 삶을 대신해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다​​​시집『한잔의 자유』에서​​​​​

달빛과 거미

달빛과 거미 / 안행덕 열이레 달빛이 처마 밑 어둠을 밀어낸다 어둠에 익숙한 거미 한 마리 조심스러운 사냥을 꿈꾼다 조심조심 묶어둔 거미줄에 걸린 환한 달빛 살아서 퍼덕거린다 한번 걸린 먹이는 놓아 줄 수 없다는 듯 예리한 발톱으로 줄을 당긴다 출렁, 외줄을 타는 광대처럼 날렵하다 풍경도 없이 사라지는 척 바람에 흔들리는 달빛을 슬쩍 바람 사이에 가볍게 옭아맨다 그렁그렁한 슬픔 하나 어둠에 매달아 놓고 보이지 않는 덫으로 달빛을 유혹한다. The Moonlight and a Spider / AN HAENGDUK The moonlight on the 12th of December pushes the darkness under the eaves A spider familiar with that dark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