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265

난설헌에게

​  (蘭 雪 軒) 난설헌에게 / 안행덕​ 선계(仙界)를 그리며 갓 핀 부용처럼, 수련처럼애잔하게 피었다가짧은 생을 애달게 울던 사람아 양유 지사(楊柳枝詞) 흐르는​그대 거닐던 호반 눈썹 같은 버들잎 사이로저고리 고름 풀리듯대금 한 소절 나를 휘감는다​호반에 어둠으로 묻힌 그대의 시간하나둘 일어나 나를 흔들고호수를 흔들어도선계의 도량 읽어내는 재주 없어서럽기만 하여라 채련 곡(採蓮曲)에서 연꽃 따 던져 놓고반나절 부끄럽다 하더니이제는 애타는 그리움 없고부용꽃 떨어지는 애절한 사연 같은 일 없을 터​(그래서) 나도 그대 계신 선계를 그리워하네​​​​​시집 『꿈꾸는 의자』에서​​​

詩의香氣 2025.04.05

나의 마일리지

나의 마일리지 / 호월 안행덕​​눈물에도 마일리지가 있다 눈물은 공짜가 없으니까​누구는 마일리지 포인트로 미국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는데 나는 눈물의 마일리지로 사랑을 샀다​항공권 특별 카운트 서비스로 주는 포인트를 적립하면 지구를 반 바퀴 돌지만 평생 쌓은 나의 눈물의 마일리지 사랑의 특별 카운트 왜 몰라주나 ​눈물로 침묵으로 저장된 인생 카운트 ​나의 삶 나의 추억이 쌓인 포인트 점수 나 혼자 간직한 마법의 포인트 점수는 지구 반 바퀴보다 먼 나의 한평생​​​​시집 『 푸른 시선에 가슴을 베인 듯』에서​​​​​​​​​​​​​

詩의香氣 2025.04.05

을숙도 현대 미술관

을숙도 현대 미술관 / 안행덕​​가상 사운드 뮤직실, 천장에서 내려온 가느란 줄과 바닥의 종이 상자들 연결된 암호들이 음표를 만들며 내통하고 있다. 가느다란 줄이 얇게 바르르 떨면 상자의 입술이 빗소리를 만들어 낸다. 빗소리라는 문자를 눈에 담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강바람 불어오고, 음향은 점점 커지는데 처음에는 빗소리 바람 소리뿐 그 사이에 시든 꽃이 떨어진다. 수십만 개의 소고 소리는 점점 크게 울리고 ~ 나는 큰 북을 치며 빗속을 걸어 간다 내가 운다. 빗속에 젖어 울고 있는 나,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소복의 어머니, 손을 내밀자 천둥 치고 번갯불 번쩍하는 섬광에 눈을 뜬다. 큰 북과 작은북은 간 곳 없고, 가느다란 줄이 종이 상자를 흔들고 있다​​​​경북일보 문학대전 제7회 은상 수..

詩의香氣 2025.04.02

벽조목과 명장

벽조목과 명장 / 호월 안행덕  벽조목과 명장의 한판 씨름이 시작된다숨 막히는 순간이다 벼락을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이미 사리가 되어 칼끝을 저항하고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장인의 손을 희롱한다 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는수술대에 누운 아기를 다루듯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벽조목도 순해지는데​어려운 수술 끝에 행운의 길을 여는 순간조각칼을 쥔 명장의 손이 찌릿하다지뢰의 뇌관을 건드린 듯 등줄기에 진땀이 난다  ​ 작품상 수상작​​​ 시집『빈잔의 자유』에서

詩의香氣 2025.04.02

봄 마중

봄을 기다리는 마음 / 호월 안행덕​​그리움도 병이런가남 다 자는 한밤에 잠 못 들고 너를 기다린다 ​연초록 치맛자락 강변에 살랑거리면 버들잎 눈 뜨겠지 ​그 꽃나무 자라서 바람에 꽃잎 날리면그대는 떠나가고 ​내 병이 또 도질까 한밤에 가슴 앓이로 잠 못 들고 봄을 그린다 ​​민들레 / 호월 안행덕​​도시의 삭막한 보도 불록에서한 줌의 흙을 그리워하는 너~행인의 발끝엔 눈이 없는 줄 알지만​그래도 야속해서 서럽게 우네​외로운 섬 같은 그리움에 집시처럼 떠나 보려 하네가벼운 홀씨 되어 바람 따라 하늘을 날다 보면꿈에 그리던포근한 보금자리 만날지도 몰라​밤새 떠날 차비로 하얗게 부풀어자꾸만 봄꿈을 꾸고 있구나​​봄빛 / 호월 안행덕​그대 ~연둣빛으로 오실 줄 몰랐네 가지마다 살얼음, 눈바람 때문인가 겨우내 ..

詩의香氣 2025.04.02

모란 / 이영도

모란 / 이영도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단풍(丹楓) 이영도 너도 타라 여기 황홀한 불길 속에사랑도 미움도 넘어 선 淸이어라못내편 그 청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香爐(향로) 낙화 눈 내리는 군 묘지에서 이영도 뜨겁게 목숨을 사르고 사모침은 돌로 섰네겨레와 더불어 푸르를 이 증언의 언덕 위에감감히 하늘을 덮어 쌓이는 꽃잎 꽃잎

詩의香氣 2025.01.11

벽조목과 명장 / 안행덕

​ 벽조목과 명장 / 호월 안행덕​​벽조목과 명장의 한판 씨름이 시작 된다숨 막히는 순간이다​벼락 맞고 저승을 다녀온 대추나무 이미 사리가 되어 칼 끝을 저항하고 시치미 딱 떼고 어깃장을 놓으며장인의 손을 희롱한다번갯불에 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는 수술대에 누운 아기를 다루듯 조심조심 혼신魂神을 다하는 정성에 벽조목도 순해지는데 ​어려운 수술 끝에 행운의 길을 여는 순간 조각 칼을 쥔 명장의 손이 찌릿하다 지뢰의 뇌관을 건드린 듯 등줄기에 진땀이 난다​​​​경력 2005년 시와창작으로 등단 부산 시협 회원. 금정문인협회 감사. 청옥 자문위원푸쉬킨 문학상 시 수상. 황금찬 시 문학상 수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수상 ​​  ​시집 『빈 잔의 자유』에서​​​

詩의香氣 2024.12.16

김 소 월(김정식)

가는 길 / 김소월​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한番······​저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西山에는 해진다고지저귑니다​앞江물, 뒷江물흐르는 물은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흘너도 년 다라 흐릅듸다려.​​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그리합니까?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파릇한 풀포기가돋아 나오고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가도 아주 가지는않노라시던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날마다 개여울에나와 앉아서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가도 아주 가지는않노라심은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초혼 / 김소월​​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

詩의香氣 2024.12.11

마중물 / 안행덕

마중물 / 안행덕 ​마중 가고 싶다 누구를 마중 간다는 것은 풍선처럼 가슴 부푸는 일이지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날달맞이꽃처럼 슬픈 사랑이 운다. ​마중 가고 싶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 설레는 행복이지 ​울음이 들어 있는 그 눈동자섬 같은 그리움을 만나고 싶다​마중 가고 싶다 허기진 정 때문에 텅 빈 세상애타는 기다림에 목이 마른다 ​갈증을 풀어 줄 환한 물소리 마중물 되어주면 눈물 나겠지 ​​시집 『꿈꾸는 의자』에서​​​​

詩의香氣 2024.12.08

빈잔의 자유 / 안행덕

빈잔의 자유 / 안행덕  저 노을빛 고운 저물녘망팔(望八)이 졸고 있는 툇마루보랏빛 추억이 라일락 향기로 피어난다와인 빛 고운 마음시퍼런 비수 같은 마음내 마음도 내 맘대로 못한 한평생마음은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걸 알아가는 나이무에 그리 서러운가 하루해가 지는데한 생이 하룻밤 꿈같은 걸풍선처럼 가볍게 하늘 높이 오르고 싶은 건바람 탓은 아니야부질없는 욕심으로 채워진 잔을 비워라빈 잔의 자유를 이제 알겠네바람 탓은 아니야은근한 와인보다 짜릿한 위스키황혼빛 고운 노을로 수정되는 빈 잔의 자유 .

詩의香氣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