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능소화 / 안행덕 세월이 약이라니요 날이 가면 갈수록 쌓이는 이 그리움을 어쩌라 구요 행여 임의 발걸음 소리인가 나팔처럼 커지는 내 귓바퀴를 보세요 애타게 담장에 매달려 키를 늘리는 안타까운 내 심정을 아시나요. 오늘도 붉게 피어나는 아픈 속내 감추지 못하고 줄기마다 새긴 사랑 헛되었어라 매정한 정 돌아보지 말자고 마디마디 새겨 두었건만 열꽃 같은 붉은 멍울 지우지 못하고 옛 정(情 )에 매달려 아직도 눈물 가득하여라 시집 『꿈꾸는 의자』에서 詩 作 2022.07.03
화전 풍경 화전 풍경(火田 風景) / 안행덕 병풍처럼 둘러선 태백산맥 끝자락 천둥과 비바람 백 년을 흔들어도 빛바랜 사진첩인양 하얀 구름모자 삐딱하게 쓰고 낡은 집 한 채 핼쑥한 낯빛으로 누구를 기다린다 촘촘한 너와(瓦) 목(木) 사이마다 비릿한 생선 비늘 같은 너와 지붕 푸른 이끼로 세월을 새겨 넣고 허기진 가난과 고난의 이력을 역사처럼 펼쳐놓은 회색빛 풍경 풀잎 스쳐 간 벌레들 울음소리 물 한 방울 흘러간 흔적까지 선명하다 짓궂은 바람의 어릿광대에, 반쯤 열린 문짝 추억처럼 묶어둔 역사 한 페이지 시큰거리고 덜컹거리는 무릎으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기우뚱 엉거주춤 너와집 한 채 쓰러질듯 서있다 주인이 드나들던 문틈으로 보랏빛 엉겅퀴꽃 한 발을 들여 민다 도인촌(道人村)에서/ 안행덕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詩 作 2022.06.15
문경 새재에서 문경 새재에서 / 안행덕 과거보러 가는 길 한양 가는 길 괴나리봇짐에 짚신 매달고 선비가 걷던 옛길 새들도 울고 바람도 구름도 울었다는 고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네 고개마다 구릉마다 쌓인 사연 얼마인가 주흘산, 조령산의 긴 탄식과 한숨 하얀 폭포가 되고 푸른 계곡이 되었나 벼랑에 매달린 야윈 저 소나무 몰아치는 눈바람 비바람에 제 살 내어주고 기기묘묘 해진 손가락 바위를 잡고 천 년을 버티었구나 굽이마다 떠돌던 전설, 하늘에 흰 구름 되어 호수에 제 그림자 드리우고 내려다볼 뿐 새재鳥嶺가 된 사연 구구절절 아직도 다 풀어 놓지 못하는가 나 여기 옛길에서 한 잎 풀잎 되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 옛날을 만나네 시집『비 내리는 江』에서 詩 作 2022.04.29
삼월 삼 짇 날 삼월 삼짇날 / 안행덕 _ 장 담그는 날 _ 봄바람 살랑 꼬리 흔드는 삼짇날 옹기종기 장독대 웃음소리 환하네 툭 하면 못생긴 메주라고 놀리는데 그게 어디 네 죄 이더냐 죄 없이 서러운 은둔의 몇 달 한숨을 괴춤에 찔러 넣고 돌아 앉은 골방 살이 겨울밤 창호지에 비치는 달빛도 서러워라 메마른 가슴 더 독해지기 전 진한 맛으로 누구를 유혹하라고 야시같은 봄바람 너를 흔들었구나 숯검정과 홍紅고추로 곱게 단장을 했네 오글오글 봄볕이 스며드는 항아리 잡귀도 얼씬 못하게 금줄을 치고 종이 버선 오려서 거꾸로 붙여 놓고 몸 풀 날 기다리는 새댁같이 *새칩다 시집 『숲과 바람과 詩』에서 詩 作 2022.04.03
생명 / 호월 안행덕 생명 / 호월 안행덕 종지처럼 작은 둥지에 새알 하나 두고 숲 가꾸기 예취기의 소음에 놀란 어미 새 숨 막혀 오는 공포감 옴짝달싹 못 하네 우거진 덤불 말끔히 이발하듯 베어낸 자리 은신처 들켜버려 겁먹은 어미 잃은 새알 어미 새 저만치 숨어 콩닥 이는 새 가슴 저 작은 생명 어쩌나 놀라고 기막혀도 문서 한 장 없는 저 둥지 누가 지켜줄까 억장이 무너져 내려 작은 발만 동동 거리네 시조집 『노을빛 속으로』에서 詩 作 2021.11.22
능소화 능소화 / 안행덕 세월이 약이라니요 날이 가면 갈수록 쌓이는 이 그리움을 어쩌라 구요 행여 임의 발걸음 소리인가 나팔처럼 커지는 내 귓바퀴를 보세요 애타게 담장에 매달려 키를 늘리는 안타까운 내 심정을 아시나요. 오늘도 붉게 피어나는 아픈 속내 감추지 못하고 줄기마다 새긴 사.. 詩 作 2019.08.01
고백 고백 / 안행덕 실바람 살짝만 불어도 은사시나무 부끄러운 척 잎을 비튼다 바람이 조금만 아는 척 흔들어 주면 숲은 일제히 일어서서 남몰래 감추었던 숨겨둔 아름다운 은빛 밀어들 연서를 쓰듯 술술 풀어낸다 채워도 채워도 부실한 문장文章 백지 위를 오르락내리락 드나들며 쌓은 이력.. 詩 作 2019.07.25
연리지 연리지連理枝 / 안행덕 말없이 돌아누워 잠 못 드는 늙은 부부 등을 마주 댄 채 궁리 중이다 낮에 토닥거림, 마음에 걸려 뒤척인다 나란히 누워도 등 돌린 사이 부대낀 세월, 오십 년이 파노라마로 두런두런 지나가고 있다 청실홍실 엮으며 청사초롱 불 밝히는 날 뿌리는 달라도 이제는 하.. 詩 作 2019.04.28
빈 잔의 자유 빈 잔의 자유 / 안행덕 노을빛 고운 저물녘 망팔(望八)이 졸고 있는 툇마루 보랏빛 추억이 라일락 향기로 피어난다 와인 빛 고운 마음 시퍼런 비수 같은 마음 내 마음도 내 맘대로 못한 한평생 마음은 비울수록 가벼워지는 걸 알아가는 나이 무에 그리 서러운가 하루해가 지는데 한 생이 .. 詩 作 2019.03.03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안행덕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안행덕 그리움도 병이런가 남 다 자는 한밤에 잠 못 들고 너를 기다린다 입춘이 지나면 버들강아지 눈뜨는 강변에 꽃씨 하나 심으리라 그 꽃나무 자라 바람에 꽃잎 날리면 그대 떠나고 또 내 병이 도질까 시집『빈잔의 자유』에서 詩 作 2019.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