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지면꽃2 (시마을) /안행덕

湖月, 2016. 12. 20. 18:11



노루발 / 안행덕

 

 

먼 하늘 그리워 울음 삼킨 숲

잎마다 푸른 그늘이 내려앉은 그곳

어둠을 빠져나온 여린 노루발 꽃송이

전설을 방울방울 피워내고 있다

 

은혜를 아는 노루는

산에만 발자국을 찍는 게 아니었구나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옹색한 달셋방

달빛을 콩콩 찍고 가는 발자국도 있다

 

매일같이 낯선 길을 돌고 도는

수선 집 재봉틀에 달린 노루발

허기진 발로 밥 한 공기 찾아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구닥다리 낡은 세월 뒤집어가며

이웃의 서러움도 꾹꾹 밟아 기워내는 발

 

툭툭 뜯어진 옷깃, 털어내는 발톱 끝에

싸라기처럼 묻어나는 실밥을 먹고

야윈 발가락이 절룩거릴 때마다

덧대고 이어주면 드디어 빛나는 진실

오늘도 생의 늑골 밑을 환하게 비춘다 

 

 

쑥 같은 그녀 / 안행덕

 

 

아지랑이 춤추던 자리에

봄볕이 기웃거릴 때

잔설 비집고 아무데서나

쑥쑥 나오는 저 쑥 좀 봐

가녀리고 보드라운 저 몸집 어디에

혹한을 참아내는 깡단을 숨겨두었을꼬

서럽고 차가운 냉대 온몸으로 견디고

아무데서나 히죽 웃는 서산댁은

아마도 전생이 쑥이었나 봐

하얀 앞치마에 탁배기 세례를 받아도

뽀얀 얼굴이 멍들어 푸르뎅뎅한 쑥색이 되어도

아롱아롱 걸어들어올 자식을 기다리며

쑥 범벅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여자

은은하고 쌉싸름한 쑥 차 같은 여자 

    


조개무덤 / 안행덕

 

 

주인을 잃어버린 빈집

누가 이렇게 무덤처럼 쌓아 놓았나

산처럼 모여 있어도 외로운가

가슴 열어 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하네

 

 

세상에

뼈를 깎아 세운 아름다운 집

이렇게 고운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어느 누가 보쌈을 해갔는지 흔적도 없네

 

대문도 없는 빈집에 죽은 조개를 찾아온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조문하고

애도 곡 같은 파도 소리 따라

물새들 울음은 곡哭소리처럼 서럽네

애장터에서 우는 새끼 잃은 어미 같네

 

바람둥이 파도는 쉬지 않고

주인 없는 빈집을 슬쩍슬쩍

염탐하듯 들여다보네

 

 

  2016년 12월 10일 발행.  시마을 작가시회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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