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천양희 / 밥

湖月, 2015. 5. 27. 18:41

 

 

 

                                        천양희 시인

밥 /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몽산포  / 천양희

마음이 늦게 포구에 가 닿는다
언제 내 몸 속에 들어와 흔들리는 해송들
바다에 웬 몽산(夢山)이 있냐고 중얼거린다
내가 그 근처에 머물 때는
세상을 가리켜 푸르다 하였으나
기억은 왜 기억만큼 믿을 것이 없게 하고
꿈은 또 왜 꿈으로만 끝나는가
여기까지 와서 나는 다시 몽롱해진다
생각은 때로 해변의 구석까지 붙잡기도 하고
하류로 가는 길을 지우기도 하지만
살아 있어, 깊은 물소리 듣지 못한다면
어떤 생(生)이 저 파도를 밀어가겠는가
헐렁해진 해안선이 나를 당긴다
두근거리며 나는 수평선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부풀었던 돛들, 붉은 게들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이제 몽산은 없다,
없으므로 갯벌조차 천천히 발자욱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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