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행덕 시 세계

백치여서 다행이다

湖月, 2025. 4. 2. 13:49

황금찬 시인 친필 ( 문학상 꿈꾸는 의자 )

 

 

 

백치여서 다행이다 / 호월 안행덕

나의 방황은

언제나 바다 앞에서 시작되는데

어쩌면 길 잃은 여행의 시작이다

파도의 음계는 언제나 오독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무작정 이정표 없는 길을 걷게 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죽어가고 태어나는 생명을 보라

그들은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다

 

밤마다 향초를 켜고

두 손 모아 번제燔祭를 올리는

제사장의 간절함을 너는 아는가

다만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나

백치여서 다행이다

 

 

 

목탁새 / 호월 안행덕

이른 아침부터 참회하고 참선이라도 하는지

숲속에 청아한 목탁 소리

목탁 치며 염불하는 너는 누구냐

 

무슨 사연 그리 깊어

죄 없는 나무를 쪼아대며 애절히 하소연하느냐

 

그토록 간절한 발원이라면

부처인들 돌아보지 않을까

새야 새야 목탁 새야

저 ~ 나무속 깊이 파고 들어가

연화좌蓮花座라도 틀고 앉으려 하느냐

 

​네 목탁 소리 청아하고 가련해서

서러운 비구니도 가던 길 멈추고 합장을 한다

시전집 『달빛을 등에 지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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