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를 오래 생각하는 저녁 / 박현웅
오랜 풍력에도 물이 되지 못한 물의 족(族)
버드나무가 수맥을 찾아 가지를 흔들고 있다
부풀어 오르던 엽록(葉綠)이 소리를 깔며 비처럼 내린다.
수많은 사이가 채워져 한그루 흔들리는 허공의 물살
수심(水深)이 없는 잎들은 바닥을 알지 못한다는 듯,
푸른 물방울로 바닥을 쳐보고 싶은 것이다
나무를 업고 있는 그림자의 등이 축축하다
버드나무 그늘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듯 이리저리 옮겨 앉는 오후의 빛
올 봄 물의 길을 물어 연못을 팠다
멀지 않은 곳에 버드나무 꽃이 핀다는 계절의 일이다
한 번도 기억한 적이 없는 꽃
물이 숨 쉬는 것을 보고자 한 일이었다
아래서 위로 솟구치는 물줄기, 물의 줄기란 아래로 흐르는 종족 인줄만 알았다
늦은 밤 내 몸에 귀를 대는 일도
흐르는 몸의 수로를 궁금해 하는 것도 요즘의 일이다
살아서는 저 땅 속의 일가들과 면접(面接)이 없겠다는 생각.
바람도 저마다 뿌리가 달라 색색으로 물드는 나무들
저 버드나무줄기가 바람의 골격으로 결코 땅에 닿지 않는 것은 순전히 물의 힘이다
허공에도 흐르는 물살이 있다면 저와 같을 것이다
제 몸을 물가로 끌고 가는
버드나무를 오래 생각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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