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시루속의 콩나물 같은 맑은 詩
시조시인 박옥위
시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닦아내는 일이다. 아니 마음을 맑혀 내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는 시의 씨앗이 된다. 상처는 생의 상실에서 오지만 원초적으로 사람은 다 희로애락의 오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것은 어떤 근원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 길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움의 집을 짓는 것이 시다.
안행덕 시인은 시로서 시를 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다.
이번에는 시조를 써서 보여준다. 시조는 國詩이니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쉬이 다가갈 수 있는 근원적인 영역이다. 쌍수를 들어 기뻐한다.
안행덕 시인의 시조는 볼수록 시조의 율격이 단정하다.
이조백자를 「달 항아리」에 비유하는 일은 이미 많은 시인이 읊은 주제이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생각에 따라 아름답게 묘사된다. ‘떠오르는 보름달’ ‘너그러운 그 자태’ ‘토태土胎에 숨겨진 단단한 심기’를 읽어내며 이조백자를 언제나 떠오르는 ‘휘영청 밝은 달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윽한 서정이다.
「외돌개」 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벅수’라고 하니 그것은 또한 그 시대의 그의 심상을 대변한 것인가. ‘곡절 많은 바람’ ‘시샘 없이 말없이’ ‘파란의 대 서사시’에서 다시 한번 이순신의 애국충정을 읊어보는 것이다. 「폐(廢)타이어」는 폐품 이용이라는 명제다. ‘작은 통통배 옆구리에 매달려서’ ‘목선을 온몸으로 동그랗게 끌어안고’ ‘짠물에 발을 담근 채’ ‘산드러지게 춤추는 바다’ 한때 젊은 이 아닌 사람 어디 있던가! 지금은 천대받는 노인들의 손자 사랑의 마음이 왜 읽히는 것일까! 손자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페타이어를 통해 다가온다. ‘파도의 왈츠 곡으로 짜릿한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생기발랄하다. 늙는다는 것은 많은 체험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답게 늙어 또 다른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갈 일이다.
‘연꽃’을 ‘비구니’ 로 표현하기도 하며. 암남공원에서는 ‘그리움 고인 자리
에 바다가 먼저 와 있다’ 고 한다. 그것은 그리움은 바다라고 하는 말로 환치되기도 하니 ‘선홍빛 노을이 서사시’ 가 될 수 있겠다.
송도해수욕장 개장 100주년 문예 작품 공모 수상작인 그리운 송도 해변은」 ‘추억으로 가는 길’ 그것은 ‘눈물 빛’이며 ‘진주 빛’ 을 몇 자락 감고 돌아 맨발로 거북섬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 ‘푸른 솔 송림’이 ‘시처럼’ ‘그림처럼’ ‘백 년의 아픔마저도 물안개로 슴벅이는 것’ 이다. 그리고 다시 ‘눈물 젖은 추억’으로 휘돌아 돌아오는 것이다.
「눈부시다」 이 시조는 초장과 중장이 연결되어 있다. 숨결이 멎지 않고 단숨에 달려오는 시상을 바로 낚아 쓴 글이다 ‘말없이 가버린 너 같은 조팝꽃 눈부시다’ 그것은 청춘일까! 잃어버린 꿈의 소리가 자잘하게 일어나 조팝꽃처럼 하얗게 피고 있는 것이다. ‘눈물 덜 마른 뽀얀 얼굴로 내 가슴을 파고들던 너’ 는 시적 화자의 그리움인가!
‘오래 기다린 그리움’ ‘한 아름의 꽃 무더기’ 가 ‘눈부시게’ 곱다.
시루에 앉은 첫날 세상은 캄캄했지
한바탕 야윈 몸살 서럽게 울음 울고
어둠에 익숙해지며 살아있어 놀랐네
꼬투리 부풀듯 마음도 부풀어서
가슴속 그리움이 물소리로 흐를 때
동이 속 어둠이 키운 사각사각 한 여자
담황빛 줄기 끝에 고운 듯 가녀린 발
생명의 노래처럼 달싹이던 서러움에
눈물을 질금거리다 환해지는 저 여자
-「콩나물 시루속의 여자」전문'
‘절망은 희망이다.’ 란 말이 「콩나물시루 속의 여자」 속에서 읽힌다.
‘캄캄한 세상에서 서럽게 울다’ ‘가슴속 그리움이 물소리로 흐르고’ ‘동이 속 어둠이 키운 사각사각한 여자’에서는 생의 풋풋한 기쁨이 물결치고 드디어 ‘눈물을 질금거리다 환해지는 여자’로 돌아와 있다. 그것이 바로 안행덕 시인의 저력이자 모습이다.
녹차를 마시며 에서는 차 마시는 정경이고요하고 정갈하게 그려지고 있다 역시 부산 차 문학상 수상작이다. 「은행잎 연가」에서는 ‘오래전 잊었던 얼굴’ ‘햇살처럼 걸어 나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설중매」에선 ‘선비’ ‘정인’ ‘날마다 이우는 달 보며 시를 읊는’ ‘새아씨 부끄러운 미소 말간 웃음’을 건져내기도 한다. 생명의 파닥임을 만끽 하려거든「대변항」으로 가볼 일이다. 거기에서 멸치 떼를 만나리라. 그리고 삶의 환희도 맛볼 것이다.
「추사와 참솔」 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애를 나타내었다. ‘초막 위 달빛 따라 하얗게 내린 눈’ ‘임인 듯 적소를 보듬어 안은 선비’ ‘에인 듯 살얼음 속내 시린 달을 품었다’ 라는 명 절구를 만나기도 한다.
‘에돌아 그려낸 풍경 놀라워라 저물 빛’( 「문항리(文巷里, Munhang-ri)」) 같은 가구를 만나며 ‘정자나무 이파리마다 책장을 넘기는 바람’ ‘담 넘어 글 읽는 소리 낭랑’ 들리는 듯 바다 마을의 서정이 잡혀 온다. 「꽃잎 같은 여자」와 「콩나무 시루 속의 여자」 는 오버랩 된다. 삶의 관조가 여여 하다.
이상에서 훑어본 안행덕의 그의 시조관은 달 항아리 같이 고아하기도 하고 조팝꽃처럼 눈부시기도 하다. 그의 시적 소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그의 생활 한가운데에서 뿌린 내린 그의 시는 추사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불러 온다. 그러나 그의 시의 핵심은 스스로를 시인의 반열에 곧게 세우는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폐타이어에서 보여주는 정서는 인간존중 사상으로 기울어 있고 「꽃잎 같은 여자」와 「콩나물 시루속의 여자」 는 다름 아닌 그의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시상에 박수를 보낸다.
시는 ‘발견’ 이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눈으로 사물과 조우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시조를 쓰는 시인 한 분을 만나는 기쁨이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정진을 바라며.
2021. 5, 병산 송예원에서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시조 시인협회 자문,
시조시인 박옥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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