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들다
이인주
저녁나절, 사립문 앞 오갈피나무 곰곰 귀를 연다
바랜 이파리 부석거림에 오갈들듯 말리는 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한 날숨 한 줄 먹먹히 뒤척인다
간절함이 깊으면 몇 길 파란으로 굽어질까?
뻗어갈 데 없어 관절 굽은 가지
어둑살이 가두리를 짓는다
햇살 감은 이파리 찰랑찰랑한 몸살이
그대 눈빛에 덧없이 꺾일 때
순량으로 빛날 수 없는 내가 거기 있었다
오, 갈피 잡지 못하는 나무의 자세는
그대 굽어보는 쪽으로 소리의 귀를 말아넣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대
내가 오래 웅크렸던 비틀린 시간들을
후박나무나 산사나무 이파리로 펴 달지 말라
가장 오진 힘줄만이 생장점의 바늘귀를 꿰뚫으리니!
구부러져 튕긴 누군가
모른 척 누운 그대 흉금을 칠 때
꽃창살을 가른다
붉디붉게 오갈들린 한 잎의 비원
금빛 활처럼 휘어지는
시집『초충도』2016.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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