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香氣

장수하늘소

湖月, 2008. 12. 26. 19:14

 

장수하늘소                                  

                          이종섶

  

 

  길고 부드러운 더듬이로

  조심조심, 길을 찾아가는 신발 한 켤레

  보도블록 껍질에 새겨진 협곡을 따라

  쉬지 않고 길을 더듬다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든 밤

  얼마나 고단했는지 짝을 챙길 힘도 없어

  암컷은 이쪽 수컷은 저쪽

  서로 떨어져 곤히 잠들어 있다

  주인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집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

  하루 종일 더듬이를 세우고 걸었던 것이다

  오늘은 너무 멀리 날아갔다 왔는지

  아무렇게나 벗겨져 뒹굴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가슴앓이를 참아가며 잠들었을 밤

  커다랗게 벌려져있는 입속에

  허기가 잔득 고여 있다

  남몰래 아껴먹던 졸참나무 수액이

  아직 남아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목숨을 버려야하는 신발

  사랑은 이렇듯 애틋한 것이다

  함께 오래 살자고 매일 밤 다짐하는

  다 늙은 장수하늘소 한 쌍

  힘없는 잠꼬대 소리, 현관을 울린다

 

  

계간 『다층』 2008년 봄호발표

 

 

 

 

이종섶 시인
  1964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으며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