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늘소
이종섶
길고 부드러운 더듬이로
조심조심, 길을 찾아가는 신발 한 켤레
보도블록 껍질에 새겨진 협곡을 따라
쉬지 않고 길을 더듬다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든 밤
얼마나 고단했는지 짝을 챙길 힘도 없어
암컷은 이쪽 수컷은 저쪽
서로 떨어져 곤히 잠들어 있다
주인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집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
하루 종일 더듬이를 세우고 걸었던 것이다
오늘은 너무 멀리 날아갔다 왔는지
아무렇게나 벗겨져 뒹굴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가슴앓이를 참아가며 잠들었을 밤
커다랗게 벌려져있는 입속에
허기가 잔득 고여 있다
남몰래 아껴먹던 졸참나무 수액이
아직 남아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도
목숨을 버려야하는 신발
사랑은 이렇듯 애틋한 것이다
함께 오래 살자고 매일 밤 다짐하는
다 늙은 장수하늘소 한 쌍
힘없는 잠꼬대 소리, 현관을 울린다
계간 『다층』 2008년 봄호발표
이종섶 시인
1964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으며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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