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그림자(詩集)

제 5 부

湖月, 2016. 6. 28. 20:10





도인촌道人村에서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 단풍이 들면

굳이 도인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라도 선인仙人이 되는 여기

홍조 띤 이파리 돌탑을 유혹하면

정중하고 근엄하게 익은 햇살 받으며

고조선 단군 설화를 설법하네

 

가을에 기대어 들어 보자

침묵의 돌탑에 서린 사연을

고조선 천지화랑과 청학은 어떤 사인지

 

푸르고 큰 날개 밑에 알을 품은 청학이

긴 목으로 삼신봉을 두루 살펴 천적을 경계한다

곱디고운 추억 같은 단풍으로 치장한 청학동에서

근심도 시름도 다 내려놓고 스스로 단풍들어라

 

 

미모사를 닮아서

 

작은 풀꽃 이파리 톡 건드리면 깜짝 놀라

맞은편 잎에 쓰러지듯 축 처지던 신경초

넌 그랬지

 

눈빛만 주어도 수줍어 쩔쩔매던 너

그 모습이 마치 미모사를 닮아서

엄살초라 부르고 싶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안쓰럽게 축 처지는 잎처럼

넌 그랬지

닫기도 전에 움츠러드는 너

나붓이 쓰러지는 밤이 서러워

밤만도 애달픈데 봄밤은 더 애달파라

엄살이 심한 미모사를 닮아서

가까이할 수 없는 너

넌 그랬지! 



해바라기  


 눈부신 햇살처럼 언제나

찬란한 태양으로 보이는 그대

환한 미소로 꽃이 되고 마는 일편단심

하루는 그대로부터 시작 되고

온종일 그대 생각으로 꽉 찬 설렘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차마, 고개 들지 못하고

가슴만 설레는 못난 이 마음 

눈을 감으면 빙긋이 웃는

그대 모습 보이네  

고추잠자리 군무에 마음 졸이고

어두운 밤이 올까 애태우는

해바라기 마음

물소리 바람소리 나를 설레게하고

그대 위한 노래

노란 꽃편지 접으며

나는 기도를 하네

부드러운 바람처럼

환한 햇살처럼 그대 내게 오소서



봄바람

 

앙상한 가지 어루만지면

윤기 없던 우듬지 푸른 빛 돌고

 

가지마다 살랑살랑 봄 전하며

​슬쩍슬쩍 꽃망울 터트리네

 

발그레한 꽃술마다 입맞춤하며

바람둥이 봄바람 지나가네 

 

명지 유채꽃

 

낙동강을 건너오는 맨발의 봄바람

저 강 건너서 바람 따라 그대 오려나

봄바람 희롱에  머뭇머뭇 피어난 꽃

열병처럼 번지는 노랑 연정 만발이다

밤새도록 수군대는 샛노란 소문

강물처럼 출렁이는 유채꽃 물결

분단장 곱게 하고 봄볕에 나와

춘심을 감추지 못하는 환한 꽃 마음

무더기무더기 모여서 하늘 그리며

첫사랑 고백처럼

수줍은 미소 남실거린다 

 

자목련 피네

 

봄비 그치고

백목련 소리 없이

소복처럼, 하얀 꽃잎 지는데

자목련 피네

핏빛 울음 입에 물고

전설 속 조강지처 닮아

자목련

아픈 상처 감추려고

북쪽 하늘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며 피네

사랑과 이별

증오와 그리움

봄날은 다 보고 모른척하네

 

낙화

 

꽃 지네, 꽃이 지네

봄바람에 꽃이 지네

꽃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만

귀촉도 울음이 애달픈 건

뉘를 탓하랴

 

찬바람 모진 삼 동

꽃피울 날 기다리며 비몽사몽

그리움에 아픈 줄 몰랐거늘

고작 여남은 날을 위하여

너 그토록 노심초사했구나.

 

 

  솟대가 보낸 전문

​ 

금정산성 북문에서 범어사로 내려오는데

하늘빛 허공에

수묵담채 진경으로 새떼 한 무리

마른 나뭇가지 높이 올라앉은 나무새

무설설 불문문 경지에 닿으려

무리지어 경전을 펼쳐놓고 숙독 중이다

​ 

누가 만들었나

신의 영역을 탐내는

하늘에 닿고 싶은 저 소망

​ 

하늘 높은 장대 끝에서 목 길게 늘이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솟대

내 마음속 소망을 알아차린 듯

하늘과 땅 사이에 메신저가 되겠다고

포로롱 바람을 부르는 날갯짓에서

이 마음 하늘에 타전됐는지

범어사의 독경 소리 숲으로 떨어진다

 

 

 

 

 

 

 

 

 

  

 오륜대 둘레길 걸으면

​ 

당신의 삶에서 조금 어긋났다 싶어

먹먹한 외로움에 명치끝이 아려오면

말 없는 말 속에다

쑥꾹새 잠재워 두고

이곳 오륜대 둘레길을 걸어보라

편백림 숲을 맨발로 걸으면

작은 들꽃의 속삭임 들리고

수원지 물속

잉어떼의 화려한 군무로

조용히 울리는 G 선상의 아리아

선율을 타고 꼼지락거리는 하얀 물안개

회동 수원지의 비경

평생에 내 가슴 태울

시심(詩心)을 본 듯하구나

​ 

텅 빈 그대 가슴 적막한 저녁이 찾아오면

먼 나라에서 온 편지를 들고

젖은 눈시울로 호수를 바라보아도 좋다

그대 가슴에 남아 있는 작은 불씨 하나

여기 황톳길에 다시 지펴도 좋으리

​ 

잃어버린 세월은 곱게 접어두고

순례길 같은 산책로 굽이굽이 돌다 보면

해탈문(解脫門) 걸어가듯 가벼워지는 발걸음

 

 금정산성에 가면

​ 

구름따라 바람따라 금정산 오르다 보면

구름이 지나가는 길목에

구부러진 능선 따라 선명한 용의 발자국

아직도 능선을 타고 넘는 거대한 용 한 마리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악스런 난리에

백성의 피와 땀을 섞어 쌓아 올린 길고 긴 성벽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호국 영혼(靈魂)이 용트림하지

평생 여의주를 지키는 구부러진 소나무 한그루

허리 굽어 꼬부라진 노구에도

원효봉을 바라보는 북문을 떠난 적 없네

금빛으로 휘어진 성벽에 기대선 채

나비바위 부채바위 만난 적 없어도

날마다 지나가는 바람에 안부를 묻고

그래도 허전하게 빈 가지

팽팽한 메아리가 둥지를 틀었네

 

 

 

 

 

 

 

 

 

 

 

아름다운 금정산 (수정본)

태고의 신비를 만나러 가자

금샘으로 유명한 부산의 명산

굽이마다 진산이라 자랑하니

봉우리마다 음각되어 푸르다

 

인간사 번뇌도 한순간에 아우르는

천년 고찰 범어사를 품어

구름 아래 흐르는 물소리 도란도란 정답고

떠돌이 산새들도 노래하는데

무너진 성벽아래

푸른 이끼가 말하는 슬픈 역사를

남몰래 퍼 나르는 저 바람을

누가 감히 시비를 걸겠는가

 

진경으로 펼쳐진 숲길에

나비가 춤을 추듯 부챗살을 펼친 듯

기암괴석이 전하는 전설을 들으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더듬어 오르다 보면

묵묵한 고당봉이 마중을 온다

 

 

 

 고당봉

​ 

천상에서 내려온 신령의 발자국인가

보기 드문 바윗돌, 탑인 듯하네

​ 

하늘 문 열렸다 닫혔다 하는 사이

하얀 파도처럼 떠 있는 구름

허공을 치는 바람에 밀리면

섬처럼 외롭구나

​ 

신령한 말씀이 돌이 되었나

화강암 바위라 하기엔 근엄하다

구름을 입었다 벗은 맨살로

아찔한 비알 부둥켜안고

낙동강을 바라보는 고당봉

​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운우雲雨

귀한 천상의 소리

사면으로 번지는 비경

운우지정이 여기에 있네

 

고당봉에서

  

위태로운 화강암 절벽

굽이굽이 오르면

승천한 용의 발자국

숲길을 밟고 따라오네

 

고당봉 정상에 이르니

천구만별(天龜萬鼈) 

발아래 엎드려 부복한다

나비바위 부채바위 장엄함에

경탄하는 물소리 바람 소리

 

휘돌던 안개 바람

하얀 도포 자락에

고당봉 표지석 하늘에 뜨고

나 그대로 신선 되었네

 

무궁화(無窮花)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되면 돌담에 눈을 가리고 

자랑스럽게 부르던 ​우리나라 꽃 ​

바람 따라 등고선 넘어갔는지, 보이지 않네 

​숨바꼭질하던 아이 따라 꼭꼭 숨었나

보랏빛 상처 안으로 감추고 하얗게 웃으며

​인적 끈긴 묵정밭도 초가삼간 울타리에도 

수수한 민초처럼 우리네 모습처럼 

당당하게 꽃잎마다 종소리 울리며

신라의 근화향은 무궁화의 나라인데​

일제의 만행으로 설 자리 잃어버리고

아직도 숨죽이고 숨어 우느냐

불타는 열정 안으로 삭일 줄 아는 여인처럼 

하얀 꽃잎 속에 붉은 자줏빛

하루를 살아도 깔끔하게 피었다 지는

​무궁화야 무궁화야

 

 꺾어도 산다

 

 

누구나 즐겨 찾아 거니는 산모롱이

무심히 내려오다 우연히 만났네

툭 꺾어 심어 고단한 근화양의 민얼굴

 

누가 심었는지 꺾어 심어도

부러진 아픈 상처 내색도 아니 하고

상처를 다독거리며 살려 하네

 

저를 기억해준 그 사람을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총총걸음 기도하며

바투고 넘보지 않고 섭쓸려서 사네

 

잡풀과 어울려 환상통 견디면서

물관을 남실남실 진종일 오르내리며

화봉을 만날 그 날을 꿈꾸며 사네

 

우리 나라꽃

  

아침이슬에 젖은 꽃잎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밤새도록 그리움으로

가슴이 붉어진 걸 감추려고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돌고 도는 세상 걸음마다

한얼 단심 붉게 새기라고

피고지고 피고지고

끝없이 피어 올리는 저 열정

끈질긴 인내로 꽃등을 내어 걸지만

무심한 세상인심에

외롭게 하늘 보고 웃습니다

 

아무에게나 환하게 불 밝히고

우리나라 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오늘도 눈물 글썽이며 또

피어납니다

 

일편단심 화

 

 

파란 하늘에 몸을 씻은 듯

바람이 매만진 이파리 파랗습니다

하얀 꽃잎 속에 붉은 무늬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지

아무 곳 어디라도 툭 꺾어 심으면

말없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세우고

한결같이 참돼라 꿋꿋해라

포기하지 마라 서로를 믿어라

꽃말로 말하지요

빛나는 명언을 송이마다 새기며

저들끼리 화사합니다

한 조각 붉은 마음 일편단심으로

나라 사랑 겨레 사랑 가르치며

무궁화(無窮花) 꽃이 되어

무궁 무궁 피었습니다

 

 

그대에게 꽃 한 송이 바치다

(헌화제)

 

 

동백기름 바른 듯 윤나게 잘 꾸며진 UN 묘지

유월의 정원은 고요하다

청동 묘비 아래 잠든 벽안(碧眼)의 젊은 그대

반세기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약관이리

낯선 아침의 나라에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총탄과 포화 속을 종횡무진 달리다

스러진 젊은 넋이 여기 잠들어있다

꽃과 정원수가 아름다운 정원에 잠들었지만

그네들의 성난 목소리 포효가 들린다

아낌없이 흘린 피 붉은 넋을 무엇으로 위로하랴

 

당신은 불멸이다. 정갈한 마음 담아 꽃 한 송이 바친다

처절한 비명이 묻어있는 참전국 국기 앞에서

고사리손을 잡은 참배객, 옷섶을 여미고 눈을 감는다

6.25에 젊음이 멈춰버린 낯선 이방인의 미소가

한 마리 나비처럼 꽃바구니에 앉는다

 

 

 

각시투구꽃

 

초오라는 풀꽃 아실랑가 몰라

자줏빛 정열은 가슴 깊이 숨기고

보랏빛 위엄으로 다소곳이 보여도

독한 여자 장희빈을 닮은 꽃이라네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은

설악산 오대산을 배경으로

요염하게 피어 

하루를 살아도 멋지게 살겠다 하네 

 

고달픈 세상살이

감추고 싶은 게 하도 많아   

치사량의 맹독을 숨겨두고

믿음직한 전사처럼

투구로 위장한 위험한 그대 

각시처럼 어여쁜 꽃으로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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