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체리카 / 안행덕 (카멜레온 꽃)
사는 게 무언지 이삿짐 화분에 담긴 작은 꽃 이파리 잠깐 비친 햇살에 생긋 윙크하고 얼른 얼굴색 바꾸며 붉은 하트를 보낸다 응달진 베란다 난간에서 어둠을 기다리며 금방 또 얼굴색 바꾸네 저 작은 풀잎도 사는 게 무언지 아나보다 가성비를 아는 꽃 포체리카 빛과 온도에 예민한 반응 보일 때 비로소 예쁘다는 소릴 듣는다는 걸 알았나보다
자아(自我)을 잃어버린 카멜레온 현실은 순간 포착이 빨라야 산다고 배웠나 보다 제 몸을 재빨리 변신하는 건 그가 살아남기 위함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고 지쳐도 소스라치는 아픔을 참고 수족을 잘라 종족 늘리며 앙다물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걸 저 작은 풀잎이 어찌 알았을까
시들은 꽃이 되어 쉼터로 온 가정 폭력피해 할머니 까무룩 잠이 들더니 꿈속에서 카멜레온 꽃이 되었나 잠든 얼굴이 꽃처럼 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