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湖月, 2009. 8. 13. 11:42

 

‘잘못된 문장’이 때론 문장이 된다
시 - 김언 ‘기하학적인 삶’ 외 28편

미안하지만 우리는 점이고 부피를 가진 존재다.

우리는 구이고 한 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변함없는 크기를 가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칭을 이루고 양쪽의 얼굴이 서로 다른 인격을 좋아한다.

(중략)

우리의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고향에 있는

내 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간다. 거기

누가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점을 찾는다.

-‘기하학적인 삶’ 부분(‘현대문학’ 2009년 1월호)


 

모순으로 가득한 문장이다. 수학적 정의에서 ‘점’이란 부피가 없는 존재인데 시인은 “부피를 가진 존재”라 말한다. 그러나 실제의 삶으로 내려오면 그의 문장은 되려 진실에 가깝다. 부피가 아무리 커도 먼 거리에서는 ‘점’으로 보이게 마련이니.

“네모·동그라미·점을 추상어로 배우지만 실생활에서 완벽히 체감할 수 없어요. 현실로 체감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기하학‘적’인 삶이라는 거죠. 늘 근사치의 삶인 것 같기도 하고….”

김언(36·사진) 시인은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한국 시에 없는 부분을 찾다 보니 과학이 많이 들어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과학과 삶의 불일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국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민으로 곧장 통한다. 그래서 시인은 ‘잘못된 문장’의 사례로 오를만한 문장들을 포착한다. “앞뒤가 안 맞거나 비문 같지만, 그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 있거든요. 쓸모 없는 인간이 전혀 없듯, 전혀 존재가치가 없는 문장은 거의 없으니까요.”

조강석 예심위원은 “독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한다. 감각으로 된 지성의 집을 단단히 짓고 있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김언=199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거인』『소설을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