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흑임자 / 이윤숙

湖月, 2017. 12. 21. 21:15



흑임자

                   이윤숙

 

도리깨가 공중돌기로

사내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사내가 쓰러지고

바싹 마른 주머니가 솟구치며 털린다

여름내 땡볕에서 품팔이한 쌈짓돈

비 맞은 날에도 바람맞은

날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모은 돈

닳아 동그랗게 말린 돈

속이 타서 까맣게 쩐 돈

뼈가 부서지도록

움켜지지만 속절없이

도리깨 손바닥에 돈이 다 털리고 있다

사채보증으로

전답 다 팔아넘긴 아버지 본적 있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월세방이 깻대처럼 버려졌던 날

아버지 눈물 같은 돈

나는 시퍼런 깔판 위에 소복하게 쌓인

돈다발을 채로 걸러 자루에 담았다

한 줌 쥐어 주르륵 세어보는

향긋한 아버지 땀 냄새가 뼛속 깊이 스민다

 

- 201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