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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문화일보 신춘문예신인상 ㅡ 윤성학

湖月, 2005. 12. 22. 19:32

감성돔을 찾아서

 

/윤성학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의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본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 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영등 감생이:영등철(영등 할머니가 내려온다는 음력 2월초)에 잡히는 감성돔

**채비:낚싯대 끝에서 낚시 바늘까지. 낚싯줄과 찌와 납덩어리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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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누군가를 깨우는 `떨림` 됐으면..

 

멀었다 나는.

나를 키운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 내가 크긴 큰 건가. 그리고 K와 술을 마시며 낚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잉어낚시 이야기는 즐겁고 애틋했다. 잉어는 지금 없다. 낚싯대를 들고 있던 그날의 바람과 물결의 흐름과 깊이와 찌의 흔들림과 손끝에 전해오던 덩어리감만이 남을 뿐이다.

K와 나는 조금씩 취해갔다. 내가 잡은 건 무엇일까. 광혜원 저수지에서 건진 향어도 지금 없다. 그럼 내가 잡은 건 뭐였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졸다가 옆에 앉은 사람의 핸드폰 진동에 놀라 깬 적이 있다. 나와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 나를 깨웠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신호들이, 그 커뮤니케이션의 언어가 누군가를 깨울 수 있을까. 내 마음 속의 떨림이 다른 사람의 허벅지에서 진동할 수 있을까. 그런 게 문학인가.

아직 멀었다 나는.

이렇게 궁금한 게 많다니. 사람들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에 깨지 않는다. 창호지 조그만 틈으로 팔락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작은 떨림.

매년 복권을 사는 기분으로 응모했었다. 발표가 나기까지의 설렘으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새로 쓴 몇 편의 시가 남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들이는 시간이 줄어든다. 도대체 어디다가 공을 들이고 살고 있나.

아직 멀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가족들, 나를 가르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선생님들, 나와 맥주 마시기를 즐기는 내 친구들, 농심 사람들, ‘나의 팔할 구공’ 친구들. 그들의 아랫목이 골고루 따뜻한지 어떤지 이부자리 밑으로 손을 한 번씩 넣어보고 싶다.

 

 

[약력]

1971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현재 농심 홍보팀 근무

 

 

 

팽팽한 긴장감... 쉼표에도 무게

 

/황동규(시인/서울대 교수), 최승호(시인)

 

 

본심에 올라온 작품 중에서 김선아의 ‘석모도 가는 길’, 박일구의 ‘외출’, 이상우의 ‘지리 수업’, 그리고 윤성학의 ‘감성돔을 찾아서’가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석모도 가는 길’은 아름답다. ‘세상의 마지막 노을에 물들어/ 태어나는 투명한 말’이나 ‘파도 위에 앉은 수천의 금빛 동자승들’과 같은 빼어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걸러지지 않은 감정의 토로가 흠이었다.

‘외출’은 길게 논의되었다. 이 산문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응모작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들-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는 행 갈이, 산문시 특유의 장점에 대한 뚜렷한 인식 없이 확산된 산문화 경향-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을 밝힌다. ‘지리 수업’엔 재기가 번뜩인다. 그러나 시를 성급하게 하나의 의미로 단순하게 귀결짓는 잠언조의 진술들이 더러 눈에 거슬렸다.

문학적 역량도 중요하지만 신인이라면 새로운 면모가 있어야 한다.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언어로 말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신인은 그렇다. 새로운 표현에의 열정으로 늘 젊어야 한다.

그 모든 면에서 충분히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선작으로 결정한 ‘감성돔을 찾아서’는 참신하다.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긴장을 늦추는 법없이 전개된다. 리듬의 자연스러움과 진술의 격조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쉼표 하나를 찍는 데도 이 신인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참다운 시인이라면 쉼표 하나에도 자신의 이름과 인생을 걸어야 할 것이다.

당선작에 이견이 전혀 없었던 심사였다. 그만큼 눈에 띄는 시를 만난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