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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신춘문예당선작 ㅡ 페타이어

湖月, 2005. 12. 24. 12:28
신춘문예당선작/시] 폐타이어 -------- 김종현

 

■폐(廢)타이어

                                  김종현

 

아파트 공터 한 귀퉁이

속도를 잊은 폐타이어

땅속에 반쯤 묻힌 깊은 침묵 속

햇빛을 둥글게 가두어 놓고

동그랗게 누워 있다


그가 그냥 바퀴였을 때는 단지

속도를 섬기는 한 마리 검은 노예일 뿐이었다

날마다 속도에 사육되고

길들어 갔다

다른 속도가 그를 앞질러 갈 때

그는 바르르 떨며

가속 결의를 다져야 했다

자주 바뀌는 공중의 표정 앞에서는

잽싸게 꼬리를 사려야 했다

검고 딱딱한 세계 위에서 세월을 소모하며

제한된 영역만 누려야 했다


지금 저 동그라미는 자신의 일생이

얼마나 속도에 짓눌려 왔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튕겨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으리라

예약된 모든 속도들 다 빠져나가고

속도는 한 줌 모래처럼 눈부신 한계였을 뿐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에 매달린 세월


그가 속도의 덫에서 풀려나던 날

온몸이 닳도록 달려온 일생을 위로하듯

바람은 그의 몸을 부드럽게 핥아주었다

잠시 뒤의 어떤 바람은 풀씨랑 꽃씨를

데리고 와서 놀아주었다

벌레들의 따뜻한 집이 되었다

잃어버린 속도의 기억 한가운데

초록의 꿈들이 자란다

노란 달맞이꽃은 왕관처럼 환히 피어 있다

 

 

 

[심사평/시] 문명의 피곤 어루만지는 힘 탁월


▲ 황동규·시인(왼쪽) / 김주연·문학평론가

 

 

실체야 쉽게 달라지지 않겠으나, 시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다소간 달라지는 양상이다. 따라서 이번에 선자들이 주목한 점은 새로운 문제의식이었다.

당선작 ‘폐(廢)타이어’는 이러한 의식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다. 우리 현실의 핵심을 가로질러가는 속도의 문제에 대해서, 전통적 서정의 회복을 꿈꾸는 시적 자아는 문명의 구체성에 대한 관찰과 한편으로 그 피곤을 어루만지는 시의 힘, 그 부드러움을 탁월하게 대비시킨다.

시와의 더욱 치열한 싸움을 통해 새로운 세기의 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일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히말라야의 물고기’(김성신), ‘매직아이.’(민미숙) 등의 작품들도 당선을 겨룬 우수한 시들이었다.

시적 언어의 조탁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보다 절실한 것은 야만스러워져가는 시대의 중심을 꿰뚫어 바라보면서 시의 존엄을 새삼 이루어가려는 박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황동규·시인 / 김주연·문학평론가)

 

 

[당선소감/시] 詩作은 눈물로 바위 뚫는 작업

두려움 껴안고 시의 밭 뒹굴것


▲ 김종현

 

관련기사

 

늘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의 “축하한다”는 짧은 말씀에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느낌이 있었다면 이와 같을 것입니다. 평생 이런 느낌을 껴안고 시의 밭을 뒹굴고 싶습니다.

세상과 자신을 응시하게 하는 그 무엇인 시를 위해 “시는 눈물로 바위를 뚫는 작업이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제 생활의 척추로 삼고 있습니다. 저의 눈물로 불완전한 척추를 굳건히 세우기 위해 시작(詩作)에 오체투지하겠습니다.

영남대학교의 이기철 은사님, 삶의 길을 깨우쳐 주시는 ‘www.ssza.co.kr’의 채종한 선배님, 시의 싹을 틔워 주신 경주대 문예창작과정의 손진은 선생님, ‘포항문협’, ‘푸른시’ 가족과 미숙한 시를 예쁘게 보고 뽑아주신 조선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 포항 세화여고 3학년 6반의 고운 눈빛들, 그리고 밝고 맑은 이름과 마음을 지닌 분들과 함께 당선이라는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하고도 서늘한 새벽입니다.

■김종현

1967년 경북 청도 출생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포항 세화여고 교사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 김성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처럼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유종호(문학평론가)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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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을 골라내지 못했던 지난해의 부담 탓일까? 예심을 거친 스무 명의 작품을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선자(選者)들은 공연히 긴장되고 조바심이 났다. 작년에 비추어 올해의 응모 시편은 시적 진지함이나 다양성에서는 확연히 향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판에 박힌 수사나 장식적 언술 탓인지, 작품의 개성이나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서는 별다른 진전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문 투의 엇비슷한 넋두리도 여전하였으며, 한 두 편 돋보이는 응모 시만으로는 그 가능성 또한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이 주목한 시편은 최동일, 이상훈, 주예림, 정구영, 문신, 김성규 제씨의 작품들이었다.

최동일씨의 시에서는 삶의 풍경과 굴곡을 읽어내려는 투명한 시선이 살펴졌다. 그러나 「할머니를 바라보다」외에는 시야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상훈씨와 주예림씨의 경우는 소외된 삶의 애환을 능숙한 솜씨로 공들여 시화했다는 점에서 장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어딘지 모르게 낡았다는 인상을 갖게 하였다. 정구영씨의 응모 시들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시어의 선택도 비교적 선이 굵고 선명하다. 그럼에도 직조된 시상이 다소 작위적이어서 시의 깊이나 높이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똑같은 지적은 문신씨의 응모 시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응모자는「우리들의 생활」과 같이 범상한 일상성을 따뜻하게 갈무리하는 작품도 함께 묶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결국 신춘의 지면을 장식하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김성규씨의「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가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지적된 단점들이 비교적 적게 살펴졌던 까닭이다. 암울한 세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무거움을 수사적 절제로 감당해내려 한 그의 태도도 시적 상상력을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들간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아울러 지적해 두어야겠다. 축하와 함께 분발을 당부한다.

 

 

 

김성규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3년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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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검은 배를 띄운다. 눈을 감고 바다의 폭을 가늠해 본다. 노을이 지자 닻을 올린다. 며칠동안 노를 저어가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닻을 올렸을 때와는 바다의 깊이와 폭이 다르다.

여러 번 낙선을 하고 당선통지를 받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본다. 시를 쓴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것, 인간의 아름다움과 비참함을 노래하는 것, 인간의 위대함과 인간의 초라함을 불평하는 것,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려다 실패하는 것.

어두워지는 물결을 떠다니며 소년은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야 될까. 얼마나 왔으며 또 얼마를 더 가야하는가. 처음 출발할 때의 소년은 이미 청년이 되었고 소년이 닻을 올렸던 해안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 닻을 올린다.

자식을 구원하려다 이제는 반백이 되어버린 부모님께 밥 한끼라도 차려드려야겠다. 같이 표류하고 있는 문학회 친구들, 부족한 제자를 다독여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내 시가 부족함에도 돛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함부로 닻을 내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