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영주 신춘문예] 시 당선작
선물 / 윤이산
늙은 두레상에 일곱 개 밥그릇이
선물처럼 둘러앉습니다
밥상도 없는 세간에
기꺼이 엎드려 밥상이 되셨던 어머닌
맨 나중 도착한 막내의 빈 그릇에
뜨거운 미역국을 자꾸자꾸 퍼 담습니다
어무이, 바빠가 선물도 못 사 왔심니더
뭐라카노? 인자 내, 귀도 어둡다이
니는 밥 심이 딸린동 운동회 때마다 꼴찌디라
쟁여 두었던 묵은 것들을 후벼내시는 어머니
홀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바람이 귓속을 막았는지
추억으로 가는 통로도 좁다래지셨습니다
몇 년 만에 둥근 상에 모여 앉은 남매는
뒤늦게 당도한 안부처럼 서로가 민망해도
어머니 앞에선 따로 국밥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엔 밥통이 없어가 아랫목 이불 밑에 묻었지예
어데, 묻어둘 새나 있었나 밥 묵드키 굶겼으이
칠남매가 과수댁 귀지 같은 이야기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쓸어 모으다가
가난을 밥풀처럼 떼먹었던,
양배추처럼 서로 꽉 껴안았던 옛날을 베고
한잠이 푹 들었습니다
문밖에는 흰 눈이 밤새
여덟 켤레 신발을 고봉으로 수북 덮어 놓았네요
하얗게 쏟아진 선물을 어떻게 받아얄지 모르는 어머니
아따, 느그 아부지 댕겨가신 갑따
푸짐한 거 보이, 올핸 야들 안 굶어도 되것구마이
미역국처럼 뜨끈한 묵소리를 싣고
일곱 남매가 또 먼 길을 떠나는 새벽
<당선소감>
▲ 윤이산씨
문청文靑의 새떼들. 저수지 위, 빈 원고지 일획 세필細筆로 점. 점점.. 점점점..... 고독했던 언 발목의 시간을 옮겨 적습니다. 한 번 비상에 허공, 한 편씩 식자植字되는 습작시들. 깃이 다아 빠지는, 발목 뼈 훤히 비어지는 연습비행. 아직은 저수지 활주로를 넘지 못하는 시력의 반경. 그 좁은 강폭에 발목 적셔 있어도 새들의 발목은 묶여있지 않습니다. 안개의 지평선 지우고 스스로 지평이 되는 그 날까지 삭정, 또 삭정하느라 하루가 분주한 저수지 새떼들.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섬처럼 내 안에 머뭇거리는 앉은뱅이 새 한 마리 공중 깊숙이 날려 보내던 날, 공황 같고 파업 같고 맨 바닥의 우물처럼 속수무책인은 나의 내부를 오래 들여다보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시는 늘 네 마음의 정직한 기록인가 캐묻습니다. 사무사思無邪 없이 어찌 시와 가까이 할 수 있겠는가? 참언이 되지 못할까 나의 말을 들여다봅니다. 늘 뜨끔합니다.
외로워서 시를 썼습니다. 무위의 내 존재가 무서워 끊임없이 끼적거렸습니다. 그 외로움이 나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외로움은, 시는 나의 존재증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백년 후쯤에도 시 때문에 외롭고 쓸쓸하고 더 높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종착지도 없이 가야 하는 외롭고 쓸쓸하고 높고도 먼 길, 그저 훈련처럼, 그러나 기꺼이 행복한 마음으로 걷고 뛰고... 하리라 마음먹습니다.
‘늘 깨어있으라’시며 세상과 소통하는 법 가르쳐 주신 손진은 교수님, 사무사 정신 일깨워 주신 이근식 정민호 김종섭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 밭 가꾸기 해 준 문우님들, 고락을 함께 하는 동인 <시 in> 동지들, 고맙습니다. 눈 흐려 안개 속에 헛걸음 놓던 저에게 지도 한 장 쥐어 주신 뉴스제주사와 정인수, 변종태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 선행의 아름다운 수레바퀴 따라 항상 지필묵이 분주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조 올립니다. 참 시인이 되기를 저보다 더 열망하고 후원해준 나의 경, 솔, 강, 가족들, 제 모든 인연들께 그리고 지독하게도 끈질긴 나의 외로움에게, 외로운 말 걸기에 늘 응답 주는 이 강산의 자연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향상과 문표의 자세로 삭정에 또 삭정 하며 마음의 정직한 기록자 되겠습니다. 새로 생긴 길 하나가 이제 저에게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새로 난 길, 부지런히 걷겠습니다.
경주 문예대 수료
경주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수료
시 in 동인
뉴스제주 영주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