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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쉬 ㅡ 한지이

湖月, 2009. 2. 18. 15:31

 

17세 시인 탄생‥고2 한지이 '등단'

한지이, 시인

여고생 시인이 나왔다. 만 17세에 등단한 시인 이형기(1933~2005)와 함께 최연소 등단 기록이다.

서울디지털대와 계간 ‘시작’, 월간 ‘에세이 플러스’가 공동주최한 제3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수상작이 18일 발표됐다. 시 당선작은 한지이(17·안양예고 문예창작2)양의 ‘골드러쉬’ 외 4편, 가작은 조양비씨의 ‘아이비’ 외 4편이다.

앞서 계간 ‘시인세계’를 통해서도 여고생 시인이 등장했다. 노지연(18·고양예고 문예창작2)양이 59년 만에 10대 시인 출현을 알렸다. 이후 보름 만에 또 다시 소녀 시인이 나타난 셈이다.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시적 언어의 활력과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다. 감각적 구체성과 감각적 체험에서 비롯된 시적 실감이 돋보였다”고 한양의 시를 평가했다. 서울디지털대 오봉옥 교수는 “보통 최종심에는 몇 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심을 하게 마련인데 이번의 경우는 예외였다”고 전했다.

좋아하는 작가로 소설가 전상국 이청준, 시인 기형도, 이윤학을 손꼽는 한양은 “오늘 한 통의 전화로 깊은 폐광 속으로 더욱 더 밀어 넣어 주신 심사위원 분들, 무엇보다도 어두운 나머지 딸이 길을 잃을까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한양은 “언어의 스펙트럼에 나만의 색깔로 내뿜는 아름다운 운율의 생명체”라고 시를 정의했다. “몇 편의 시로 자욱한 그리움들을 몰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자만하지 않고 결코 쉬지 않겠다. 분발하기 위해 견고한 날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골드러쉬 

 

 

 

                        한지이

 

 

라린코나다, 바람의 분진같은 사내 몇몇이
하루종일 동굴 천장에 매달려있다.
조도를 낮추며 새어들어오는 뙤약볕, 때때로
바람은 예고도 없이 굴 속에 침입한다.
그들은 라린코나다 갱도에서
지층의 나이테를 긁어모으고 있다.

 

강원도 정선 화암광산 안
석탄처럼 검은 얼굴을 가진
아버지는 너무 오래 병을 참아왔다.
이젠 하나의 폐광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몸,
말을 내뱉을 때마다 호흡곤란처럼
세상이 가르릉가르릉 거렸다.
폐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보아
곧 밤이 찾아올 것입니다. 아버지는 꿈속에서
페루의 갱도로 들어서고 있을까
저녁은 독성 폐기물처럼 번지듯 퍼져오고
시간 위로 오래된 수면이 뚝
뚝 떨어지고 있다.

 

사내들의 허기가 뙤약볕에 황금처럼 반짝거린다.
안데스에 반흔(瘢痕) 으로 남겨진 것은
이들의 몸 속에 긴 세월 박혀있던
금들이 내비치는 것은 아닐까
빙하 밑 광산에 묻어놓은 뼈조각들이
우글우글 부풀어오르고 있다.
어둠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

 

사내의 등에 묻어있던 사금가루가 아버지의 폐로 날아든다.
시간이 전속력으로 공회전하는 오후 병실
아버지도 골드러쉬 행렬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문 속
폭설같은 눈동자에서 이따금씩 아버지가 비춘다
나는 혼자서 햇무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다가
여기로 돌아왔다.

 

 


-2009년 제3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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