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닫이 / 안행덕
오랜만에 들른 친정집 건넌방
굳이 지난날 말하지 않아도
오래된 반닫이에서 양반가家 규범이 흘러나온다
보상화형에 제비초리 모양의 경첩
간결하고 절제된 선이 단아해서 친근하다
언뜻 투박한 겉모양 퉁명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검은 무쇠 경첩 사이마다 나뭇결 사이마다
어머니 손때를 그대로 새겨 놓은 듯
은은한 무늬가 되어 반백 년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주제넘은 욕심 버린 지 오래라는 듯
방 한쪽 벽에 기댄 채 다소곳이 눈 내리깔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 다 열려도
반만큼은 굳이 열 수 없다는 저 고집
수줍은 듯 입 다문 자물통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규방 처녀처럼
은밀한 비밀 한둘쯤 남몰래 감춰두고 싶은 여인 같다
무엇이든 믿음이 가는 내 어머니 여기 계시다
생의 고비마다 덕지덕지 찌든 가난
눈물 자국처럼 얼룩져도
아리고 아픈 속 반만은 접어두고
언제나 속내를 다 드러내는 일 없는 여인
과장과 허식은 모른다는 듯 수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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