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의 기억 /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뜨는 보석 같은 빛과 팽팽한 힘이
내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온다
왼팔을 창처럼 길게 뻗어 건너편 언덕을 향하고
오른손을 잠시 굽혔다가
힘껏 내쏘면
수면은 가볍게 돌을 튕기고 튕기고 또 튕긴다
보라, 흐르는 물 위에 번개치듯
꽃이 핀다, 핀다, 핀다
돌에 입술을 대는 강물이여
차갑고 짧은 입맞춤
수정으로 피는 허무의 꽃송이여
내 손에서 날아간 돌의 의지가
피워내는 저 아름다운 물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빈 손아귀에 잠시 머물렀던 돌을 기억할 뿐.
시집<입술> 2009. 시학
강인한 시인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같은 해 5월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조 당선. 시집 『이상기후』,『불꽃』,『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입술』,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가 있음.
37년간 중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년 2월 명예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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