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蘭 雪 軒에게 / 안행덕
선계仙界를 그리며
갓 핀 부용처럼, 수련처럼,
애잔하게 피었다가
짧은 생을 애달게 울던 사람아
양유지사楊柳枝詞 흐르는 그대 거닐던 호반
눈썹 같은 버들잎 사이로
저고리 고름 풀리듯
대금 한 자락 휘감긴다
호반에 어둠으로 묻힌 그대의 시간
하나 둘 일어나 나를 흔들고
호수를 흔들어도
선계의 도량 읽어내는 재주 없어
서럽기만 하여라
채련곡採蓮曲에서 연꽃 따 던져놓고
반나절 부끄럽다 하더니
이제는 애타는 그리움 없고
부용 꽃 떨어지는 애절한 사연 같은 일 없을 터
(그래서)
나도 그대 계신 선계를 그리워하네
게발선인장 / 안행덕
우리 집에 화려한 공작 한 마리 산다
목숨을 담보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발
게 발 몇 개 잘라냈다고 죄가 될까 싶어
눈물은 못 본 척 게걸음으로
작별을 재촉해 동행했지만
살아있는 발을 잘랐으니 얼마나 아플까
낯설고 물 설은 타향 같은 은신처
작은 화분 하나 제공했지만
잘린 발로, 목발도 없이 혼자 일어서려
얼마나 힘들었을까
목마를 때 물 한 방울 준 일밖에 없는데
상처 난 발끝이 아물고 새살이 돋고
발끝마다 진분홍 꽃을 매달고 보란 듯이 웃는다
옮겨온 지 3년 차 발끝마다 꽃무늬로 단장하고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꼬리를 활짝 펴고
아늑한 거실에서 대관식을 꿈꾼다
산성 문학 2017년 제 4호 초대시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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