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여행이란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어릴 때 수학여행이든
어른이 되어서 가는 외국여행이든 여행 자체가 즐겁고 들뜨게 한다.
서울 나들이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70년대 서울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아
신촌에서 홍대를 지나 제2한강교까지 걸어가기도 했는데
몇 년 전 서울에 가서 보고 놀랐다.
너무 복잡한 거리와 자동차, 그리고 사람의 물결이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더 복잡하고 갑갑하겠지, 생각이 들지만 모처럼의 여행이라 생각하니
뭔지 모르게 설레고 즐겁다.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화장도 했다.
처음 만나는 그리운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 보다.
하늘의 별처럼 높고 멀기만 한 황금찬 시인님을 뵈올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도 크지만 오랫동안 보고 싶던 시 산문 식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더 기대가 되기도 하고 나를 설레게 하는가보다
같은 문협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낭송 심사 위원이시고 시조협회 회장이신
박옥위 시조시인님께 서울에 황금찬 문학상을 받으러 간다 하니
너무 반가워하시며 황금찬 선생님의 추천으로 시조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꼭 뵙고 싶지만 여의치 않으니 성의로 선물을 전해 달란다.
놀랍게도 45년 전에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안부도 못했다며 자작 시집과 선물 그리고 편지까지 곱게 써주시는 나이 든
시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박옥위 시인께서 스물다섯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 시절
시를 썼고 황금찬 선생님의 심사를 받았고 추천해주셨고 얼마 뒤 연락이 끊겼다 한다.
세월이 흐르고 수십 년 지나면 보통 사람들은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모른 척도 하기 일쑤인데 고마운 마음씨가 시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 남편이 다 챙겨주신다
오늘은 며늘아기까지 함께 도와주니 마음이 여유롭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기차여행(고속열차)을 하게 되어 즐거운데
가족석으로 되어 탁자에 먹을 것 올려놓고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도 음료수가 흔들지 않고 빨리 지나가는 풍경도
짙푸른 음성으로 5월의 화려함을 마냥 낭랑하게 환호한다.
그 옛날(30년 전) 서울에서 부산 한번 가는데 완행열차라도 탈라치면
장장 12시간이 걸리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이 일어나
옆자리 앉은 분들과 헤어질 때는 아쉬운 작별을 하기도 하던 추억이 그립다.
서울이 가까워져 오니 예전에 보던 추억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강 철교를 지나고 곧 서울역에 도착했다.
예총회관은 혜화역에 있다고 한다.
남편은 택시를 타자고 했지만 아직 시간도 이르고 서울 거리도 구경할 겸
전철을 타고 가자했다.
좀 복잡하기는 해도 새로운 시선들을 많이 만나고 싶은 호기심도 있고
좀 더 많이 둘러보고 싶었는데 4호선 전차는 금방 혜화역에 도착했다.
표지 선을 따라나오니 바로 예총 회관이 있었다.
좀 오래된 건물에 藝 總 會 館 글이 선명하고 제2회 후백 황금찬 문학상
수상 식장이라는 현수막이 길게 내려져있다.
일층 전시실에는 아직 시상식장으로 준비 중이었다.
아무도 아는 이 없어 우선 시예협회 회장님이신 신국현 시인님을 찾았다
한복을 곱게 입고 계신 시인님은 온화한 장년 신사이셨다
안행덕 입니다. 인사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시고
황금찬 선생님께 이번 수상자라 소개해주신다.
연세에 비하여 참 정정하시다.
하늘의 별처럼 멀기만 한 선생님을 뵙고 손을 잡으니 참 따듯하고
온화하신 게 친근하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시다
반갑다는 인사와 그 옛날 선생님을 존경하던 박옥위님의 선물을 가져왔다 말씀드리니
너무 오래되어 잘 모르겠다 하시며 무척 기뻐하시는 모습은 해맑은 소년처럼
조금은 수줍어하신다. 시예협회 회원들의 도예작품과 시화 작품전시를 둘러보고
식장이 정리되는 동안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데 낯익은 신사 두 분이
계속 왔다갔다하는데 알고 보니 카페 (시 산문) 작가회장과 총무님이셨다
책님이 밖에 와있다는 말에 식이 곧 시작되니 좌석에 앉아 달라는 주최 측의 말을
무시하고 밖으로 마중을 갔다. 반가운 사람을 그냥 앉아서 맞이하기는 예의가 아닌 듯
해서다 서로 알고 지난 지 5년 만이다
사진으로 봐왔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었고 먼 길을 마다지 않고 찾아준 성의가
정말 고마워 두 손을 꼭 잡았다
문학이 그립고 시가 고픈 시절 시와 산문이라는 이름이 좋아서 가입했고
수많은 문학 카페에서 날 부르고 같이 하자 했지만 왠지 시산문은 떠나지 못했던 것이
어쩌면 카페지기(헌책님)의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이제 작은 상이지만 문학상을 받는 걸 축하 해주겠다고 멀리서(수원) 마다지 않고
한걸음에 와주었으니 반갑고 고맙다.
시를 갈고 닦는다는 게 보석을 갈고 닦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흙속에 묻힌 원석(글감)을 캐는 일도 중요하고 그 원석을 갈고 닦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루비나 수정처럼 고운 색깔도 중요하지만 가장 단단하면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보석으로 만드는 일은 최고의 기술 그 힘과 노력 없이는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도 시를 쓰는 일과 보석을 다듬는 일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원석을 만나도 내가 노력하고 갈고 닦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없고 좋은
보석이 될 수 없듯이 좋은 인연이 될 수 없다.
식순대로 시상식이 진행되고 내 시낭송 차례가 왔다.
수상작은 [수의를 짓다]였지만 낭송 시로
나의 많은 시 중에서 江(강)을 택했다
강이라는 게 세월과 역사의 은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 일생 같은 느낌으로 쓰인 것이기에
자주 읽고 애착이 가는 시다.
강
안행덕
강의 나이를 아시나요.
쉼 없이 깎이고도 참
편안히 흐릅디다그려
모난 돌에 할퀴고 벼랑에 부딪혀
퍼렇게 멍이 들어도
그 아픔 참을 수 없어
몸을 뒤틀며
쉼 없이 가야 하는 길
잊혀갈 세월 서러워
잘게 부서지는 푸른 신음
햇볕에 그을려 눈부시다
글썽이는 눈망울
울먹임이
물비늘로 반짝일 때
세월의 아픔을 안고도 처연히 흐르는 강
그, 속 깊은 가슴이 되고 싶다.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비워 내고 싶다
흐르는 세월처럼 처연해도
아무도 몰라주는 나이
속 깊은 저 강물의 나이를 아시나요.
부산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며늘아기 하는 말
“어머님 죄송해요.”
“뭐가?”
“시낭송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제 생각나서요.”
“정말 잘하시던데요. 아쉬워요.”
“그래! 괜찮았니?”
이렇게 식구들과 즐거운 여행 한번 한 것만으로도 흐뭇한 하루였다.
20090514 湖月